“마트는 일요일에 문 열지, 손님들은 비싸다고 안 사지…” 전통시장 ‘한숨’ [밀착취재]

설 연휴 시장·대형마트 둘러보니
사라진 명절 특수에 시장 상인들 전전긍긍
손님들 “시장이 더 비싸” 과일 1개씩 구매

“설 대목도 다 옛말이에요. 전집이나 떡집은 잠깐 잘 되긴 하는데 과일 장사는 공쳤다고 보면 돼요.”

설 연휴가 시작된 9일 서울 노원구의 한 전통시장에서 손님이 과일을 둘러보고 있다.

 

8일과 9일 설날을 앞두고 둘러본 서울 전통시장. 평소보다 붐비는 인파에 왁자지껄한 연휴 분위기가 이어지면서도 쉽게 열리지 않는 손님들 지갑에 상인들 표정이 밝지만은 않았다. 동대문구 경동시장에서 10여년 이상 과일을 판매 중이라는 한 상인은 “선물 세트 상자를 많이 준비했는데 반도 팔지 못했다”며 “사과나 배 같은 과일은 보통 3알씩 묶어서 팔거나 1만원에 몇 알씩 이렇게 팔아왔는데, 손님들이 하도 비싸다고 안 사니까 1알씩 팔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사괏값이 작년보다 50% 가까이 치솟는 등 물가가 뛰자 “장보기 무서울 정도”라는 손님들의 불만도 이어지고 있다. 노원구 공릉동도깨비시장에서 만난 주부 최모씨는 “그나마 전통시장이 조금이라도 저렴할까 싶어 와봤는데 할인이나 포인트 혜택이 없으니 더 비싼 느낌”이라며 “설 차례상 하나 차리는데 20~30만원이 드니 부담스럽다. 최대한 간소화해도 채소와 과일값이 많이 올라 영향이 크다”고 토로했다. 최씨의 장바구니에는 30분 둘러보다 구매했다는 5000원짜리 제수용 사과 한 알만 덩그러니 담겨있었다.

 

실제 이번 설 기간 비교적 저렴한 가격을 강점으로 내세웠던 전통시장에서 사과 등 과일이 대형마트보다 더 비싸게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통시장은 상승한 도매가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을 뿐 아니라 대형마트와 달리 공급가격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 게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전국 16개 전통시장과 34개 대형유통업체에서 사과 가격을 조사한 결과 5개에 전통시장은 1만8516원, 대형마트는 1만6915원으로 전년보다 44.6%, 9.6% 각각 올랐다.

서울 자치구 최초로 서초구가 대형마트 의무 휴업일을 둘째·넷째주 일요일에서 수요일로 변경하면서 주말에도 영업을 시작한 이마트 양재점에 ‘매주 일요일 정상영업’ 안내문이 붙어있다.

 

과일뿐 아니라 올해 설 차례상을 차리는 데 드는 비용 역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는데, 한국물가정보에 따르면 4인 가족 기준 차례상 비용은 전통시장 기준 28만1500원, 대형마트 기준 38만580원이다. 지난해 설 대목 때보다 전통시장, 대형마트 각각 8.9%, 5.8% 가격이 올랐다.

 

시장 상인들은 고물가에 손님 발길도 끊겼는데, 대형마트 규제까지 완화돼 상황이 더 악화됐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는 지난달 대형마트에 적용하는 공휴일 의무 휴업 규제를 폐지하고, 영업 제한 시간의 온라인 배송 허용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강남구 영동전통시장에서 만난 한 상인은 “그나마 주말에라도 오던 손님들이 안 오지 않겠나”라며 “앞으로 더 힘들어질 일만 남은 것 같아 기다리던 설 대목도 반갑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는 설 연휴 기간 전통시장에 적극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로 인한 시장 상인들 우려 해소를 위해 마트 및 관계부처와 협력해 지원방안도 모색할 계획이다. 지난 8일 서울 광진구 중곡제일시장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은 설 명절 용품을 구매하고 “전통시장에 온기가 돌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설 차례상 차림비용 부담을 낮추고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설 성수품 할인 행사 지원에 940억원을 투입해 작년보다 저렴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