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데려가지 못하도록 막는 장모를 때린 혐의로 검찰이 약식 기소한 '기러기 아빠'가 정식 재판을 청구해 무죄를 받았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13단독 이용제 판사는 존속폭행치상 혐의로 기소된 A(49)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2020년 10월 제주도에 있는 장모 B(68)씨의 아파트 엘리베이터 옆 계단에서 딸을 서울로 데려가는 것을 막는 B씨의 가슴을 자신의 오른쪽 어깨로 여러 차례 밀쳐 전치 2주의 타박상을 입힌 혐의를 받았다.
2014년 결혼한 A씨는 2019년께부터 양육 등을 위해 딸과 아내를 제주 처가로 보내는 '기러기' 생활을 시작했다.
2년 가까이 홀로 생활하던 A씨는 가족을 서울로 데려오고자 제주로 내려갔지만, 아내와 장모가 반대했다.
A씨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아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장모의 집에서 딸을 왼손으로 안고 밖으로 나가는 과정에서 충돌이 있던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이때 폭행이 있었다며 A씨를 수사서류와 증거만을 검토해 선고하는 약식 재판에 넘겼지만, A씨는 정식 재판을 요청했다.
장모의 진술과 수사 결과를 토대로 상황을 재구성한 재판부는 폭행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고 봤다.
장모는 사위가 거실에서 순식간에 딸을 안고 밖으로 빠르게 나갔다고 진술했는데, 재판부는 고령인 B씨가 A씨를 집 밖 계단까지 따라잡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판단했다.
장모는 폭행 당시 계단 맨 위에 있었고 사위는 계단을 한두 칸 내려간 상태였다고 진술했다. 이 대목에서도 잡히지 않으려고 급히 내려가던 사위가 장모를 어깨로 밀치는 등 폭행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으로 재판부는 봤다.
무엇보다 당시 상황에 대한 장모의 진술이 계속 바뀌었다. 애초 B씨는 수사 과정에서 사위가 휘두른 팔에 맞았다고 했지만, 재판 과정에서 팔에 맞은 것은 아니고 손녀를 붙잡으니 사위가 몸을 돌려 어깨를 밀쳤다고 말을 바꿨다.
장모는 법정에서 "신고 과정에서 사실보다 과장해 진술했다"며 진술 번복을 인정했다.
결국 재판부는 "피해자의 진술이나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A씨가 어깨로 피해자의 가슴을 밀쳐 폭행했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 없이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선고 결과는 검찰이 항소하지 않아 확정됐다. A씨는 재판 과정에서 쓴 비용 등에 대한 형사보상도 청구할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