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축구회관 벽면 곳곳에서는 ‘대한축구협회 가치체계’라고 적힌 포스터가 붙어 있다. 여기에는 ‘축구가 함께하는 행복한 대한민국’이라는 임무(미션)와 함께 ‘책임’을 포함한 3대 가치가 담겨 있다. 아시안컵 이후 축구는 행복이 아닌 분노가 됐고, 이 사태에 대해 누구 하나 책임을 지려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상황을 예상해서 붙여 놓은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아시안컵은 실패했다. 이유는 명확하다. 한국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득점왕 출신 공격수, 발롱도르 후보에 오른 수비수를 포함해 유럽파만 16명에 달할 정도로 강력한 팀을 꾸렸다. 대표팀 감독 연봉 역시 아시안컵에 나선 사령탑 가운데 두 번째로 높다. 이런 팀이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64계단 밑인 요르단에 아시안컵 출전 최초로 단 하나의 유효슈팅조차 만들지 못하고 졌으니 다른 평가를 내리기 쉽지 않다.
대회 전까지 소속팀에서 쾌조의 몸 상태를 자랑하던 이들이었고, 소속팀 복귀 후에도 훨훨 날고 있는 걸 보면 뭔가 잘못된 건 분명하다. 클린스만 감독도 요르단전이 끝난 뒤 “문제를 살펴보겠다”고 밝힌 만큼 동의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클린스만 감독은 떠났다. 아시안컵이 끝나고 한국에 돌아온 지 이틀 만이다. 해외 출장으로 대표팀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평가에도 클린스만 감독은 아시안컵 우승으로 보여주겠다고 자신했지만 과정도 결과도 모두 잃고 도망치듯 출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