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하나 책임지는 이 없는 축구협회 [현장메모]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 벽면 곳곳에서는 ‘대한축구협회 가치체계’라고 적힌 포스터가 붙어 있다. 여기에는 ‘축구가 함께하는 행복한 대한민국’이라는 임무(미션)와 함께 ‘책임’을 포함한 3대 가치가 담겨 있다. 아시안컵 이후 축구는 행복이 아닌 분노가 됐고, 이 사태에 대해 누구 하나 책임을 지려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상황을 예상해서 붙여 놓은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아시안컵은 실패했다. 이유는 명확하다. 한국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득점왕 출신 공격수, 발롱도르 후보에 오른 수비수를 포함해 유럽파만 16명에 달할 정도로 강력한 팀을 꾸렸다. 대표팀 감독 연봉 역시 아시안컵에 나선 사령탑 가운데 두 번째로 높다. 이런 팀이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64계단 밑인 요르단에 아시안컵 출전 최초로 단 하나의 유효슈팅조차 만들지 못하고 졌으니 다른 평가를 내리기 쉽지 않다.

정필재 문화체육부 기자

대회 전까지 소속팀에서 쾌조의 몸 상태를 자랑하던 이들이었고, 소속팀 복귀 후에도 훨훨 날고 있는 걸 보면 뭔가 잘못된 건 분명하다. 클린스만 감독도 요르단전이 끝난 뒤 “문제를 살펴보겠다”고 밝힌 만큼 동의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클린스만 감독은 떠났다. 아시안컵이 끝나고 한국에 돌아온 지 이틀 만이다. 해외 출장으로 대표팀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평가에도 클린스만 감독은 아시안컵 우승으로 보여주겠다고 자신했지만 과정도 결과도 모두 잃고 도망치듯 출국했다.



경질 결정이 떨어져도 성난 팬심을 달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번엔 정몽규 축구협회장이 기름을 부었다. 13일 예정된 제5차 임원회의에 특별한 이유 없이 불참을 통보하며 감독과 함께 무책임한 행보를 이어갔다.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빠진 상황에서 김정배 상근 부회장 주재로 아시안컵 리뷰를 진행하는 임원진 회의가 열렸다. 회의 참석자에도 구멍이 가득하다. 축구협회가 새롭게 선임한 부회장인 한준희 해설위원과 하석주 아주대 감독, 원영신 연세대 명예교수는 자리하지도 않았다. 이들은 정 회장이 ‘기습사면’으로 홍역을 치를 당시 ‘소통으로 환골탈태하겠다’며 영입한 인물이다.

축구협회는 15일 전력강화위원회를 연다. 이 자리에 클린스만 감독은 온라인으로 참여한다. 이 회의를 통해 사령탑 거취가 결정될 가능성도 있다. 클린스만 감독과 코치진의 위약금은 100억원에 달한다. 이날 축구회관 앞에서 정몽규 퇴진을 외치는 시위가 열렸다. 축구협회가 팬들의 목소리 가치를 얼마로 칠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