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선거구도 안 정하고 후보자부터 발표하는 정치권 코미디

4·10 총선이 내일로 꼭 50일 남았지만 기본 룰인 선거구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상당수 유권자가 자신이 사는 지역이 어느 선거구에 속하는지 모른다. 자신이 출마할 선거구가 어딘지도 모른 채 선거운동을 하는 후보들도 적지 않다. 국회의원 지역구를 선거일 1년 전까지 확정한다는 공직선거법 조항은 휴지 조각이 된 지 오래다. 선거일 39일 전에야 획정이 이뤄졌던 4년 전 21대 총선 못지않은 늑장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구획정위원회는 지난해 12월 획정안을 제시했다. 인구가 줄어든 6개 선거구를 통합하고, 인구가 많은 6개 선거구는 분구하는 내용이다. 서울과 전북에서 1석씩 줄이고 인천과 경기에서 1석씩 늘리는 안도 포함돼 있다. 국민의힘은 선거구획정위 안을 최대한 존중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여당 텃밭인 서울 강남 3개 지역구는 그대로 두고 민주당 우세 지역인 전북에서 1석을 줄이는 내용은 수용할 수 없다며 반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 총선에서 10석이었던 전북에 출마하는 후보들은 9석인지 10석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총선을 준비하고 있다. 여야는 총선 41일 전인 오는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선거구획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입장이지만 실제 협상이 재개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협상이 시작된다고 해도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더 황당한 건 선거구가 정해지지 않았는데도 여야가 공천자를 발표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는 어제 주진우(부산 해운대갑) 전 대통령실 법률비서관 등 12명을 5차 단수 공천자로 발표했다. 더불어민주당도 50곳이 넘는 지역의 공천자를 확정했다. 선수들이 뛸 운동장(선거구)도 정해지지 않았는데 선수들 명단부터 발표하는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선거구 획정이 늦어질수록 이름이 알려진 현역 의원에겐 유리하고 정치 신인에겐 불리하다. 유권자도 후보를 검증할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한다. 이 때문에 유권자의 ‘참정권 침해’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런데도 선거일에 임박해서야 여야가 선거구를 졸속으로 획정하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국회의 직무유기이자 유권자를 우습게 아는 행태다. 여야가 자신들이 만든 법도 지키지 않는다면 제도를 손볼 필요가 있다. 여야가 횡포를 부리지 못하도록 독립적인 제3의 기구에 선거구 획정의 전권을 주는 방안 등을 고려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