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의사가 진료실을 떠나고 의대생이 학교를 휴학했다. 의사 정원 2000명 증원에 반발한 의료계가 예고대로 집단행동에 나선 것이다. 그제 세브란스병원을 시작으로 어제 전국 주요 수련병원 100곳의 전공의 6415명이 사직서를 내고 근무를 중단했다. 사직서를 제출한 인턴과 레지던트 1630명은 아예 근무지마저 떠나버렸다. 전국 40개 의대 중 7곳의 의대생 1133명은 휴학을 신청했다. “환자 건강과 생명을 첫번째로 생각하겠다”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내팽개친 채 의사들이 기득권을 지키려 투쟁의 목소리만 높이니 걱정이 크다.
각 병원의 응급·당직체계 핵심인 전공의들의 근무중단으로 현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이미 잡힌 환자들 수술과 입원이 늦춰지고 응급실 업무가 마비되는가 하면 퇴원이 앞당겨지는 등 혼란이 극심하다. 제주에 사는 한 환자는 대장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기로 했다가 일방적으로 취소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 응급의료센터와 소아응급의료센터 앞에는 심정지 환자를 제외한 응급환자를 받을 수 없다는 안내문이 나붙었다. 이미 심정지된 환자만 받는다고 하면 도대체 응급센터라고나 할 수 있는 건지 의문이다.
정부는 전공의들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리고 불응 시 면허정지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압박하고 있다. 과거 3차례나 의료계 파업에 무릎 꿇은 사례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환자 건강과 생명이 최우선인 만큼 비상의료체계 가동에 빈틈이 없어야겠다. 정부도 중앙사고수습본부 차원의 비상진료체계를 가동해 전국 409개 응급의료기관 응급실을 24시간 운영하고 군병원 등 공공의료기관 운영도 확대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중증·응급환자들이 제때 제대로 된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모든 의료 인프라를 동원할 필요가 있다.
이번 사태는 의료체계 상황으로 볼 때 앞으로 2∼3주가 고비라고 한다. 전문의와 전임의 등이 빈자리를 메우는 데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정부가 의료개혁을 향해 내디딘 걸음을 후퇴하는 일만은 없어야 한다. 의사 증원은 의료계를 제외하고 국민적 합의를 봤다고 해도 무방하다. 늘 의료계 반발에 부딪혀 추진을 멈춘 비대면 진료 확대는 물론이고 임상전담 PA간호사 활용 방안까지 모든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2000명은 최소한의 확충 규모다. 의료계는 국민을 이길 수 없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전날 발언이 엄포에 그쳐서는 안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