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타워] ‘입틀막경호’를 보는 불편한 시선

정치적 반대 목소리도 감싸줄 ‘포용의 품격’ 아쉬워

지난 19일자 조간에 일제히 러시아 사진이 실렸다. 그중에는 옥중에서 의문사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대 정적 알렉세이 나발니를 추모하며 헌화하려던 시민이 경찰에 사지가 붙들린 채 연행되는 장면도 있었다. 정치적 반대를 원천 봉쇄하는 모습을 보니 기시감이 들었다.

비슷한 일이, 이보다 사흘 전 대전에서 발생했다. 카이스트 졸업식장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축사를 하던 중 졸업생 신민기씨가 “생색내지 말고 R&D(연구개발) 예산 복원하십시오”라고 외치다 입이 틀어막히고 사지가 들렸다. 졸업 가운을 입고 잠복근무 중이던 경호원들이 신속히 대응에 나선 것이다. 신씨는 별도 공간으로 옮겨져 사실상 감금됐다가 풀려났다고 한다.

유태영 정치부 차장

정부의 R&D 예산 대폭(14.7%) 삭감에 대한 항의는 왜 이렇게까지 제지돼야 했을까. 대통령실은 “경호 구역 내 경호 안전 확보 및 행사장 질서 확립을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국민의힘 배현진 의원 피습 사건으로 경호 경각심이 커진 상황이라 해도, 신씨 행위가 대통령경호법에 규정된 “신체에 가해지는 위해”에 해당하는지 의문이다.



여당은 신씨가 녹색정의당 대전시당 대변인이라는 점을 들어 “정치적 의도를 가진 행사 방해 행위일 뿐”이라고 공격하지만, 그게 과도한 대응을 정당화하는 이유는 되지 못한다. 여러 정치적 입장, 당파성이 공기처럼 존재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되는 게 민주주의 사회다. 표현 방식의 적절성이야 여론이 평가할 몫으로 남기면 된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종종 소환되는 사례가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2013년 이민개혁법 통과 촉구 연설을 할 때다. 방청석에 있던 한국계 청년 등이 “불법 체류 이민자 추방을 중단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소란이 길어지자 청년에게 다가가는 비밀경호국 요원들에게 오바마는 “괜찮다. 그냥 두라”며 “나는 이 젊은이들의 열정을 존중한다. 왜냐면 가족을 깊이 걱정하는 마음에서 그런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오바마는 “그런데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게 있다. 나는 미국 대통령으로서 말하고 있고, 우리에겐 훌륭한 민주적 절차가 있다”고 타이른 뒤 연설을 이어 갔다.

조지 W 부시 전 미 대통령은 2008년 이라크에서 더 심한 일을 당했다. 기자회견 도중 현지 기자가 “전쟁으로 과부와 고아가 된 이들이 보내는 것”이라며 신발을 던졌다. 재빨리 피하지 않았더라면 맞을 뻔했던 부시는 “신발 사이즈가 10(약 280㎜)쯤 되는 것 같다”는 우스갯소리로 상황 수습에 나섰다. “민주주의에서는 한쪽에서 지지 집회가 열리고 다른 한쪽에선 야유가 터져 나온다”고도 했다.

2020년 7월 국회 개원연설을 마치고 나오는 문재인 당시 대통령을 향해 신발을 던진 남성에 대해 구속영장이 신청되자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이 부시 사례를 거론했다. 하 의원은 “그 시민은 테러리스트가 아니며 단순 항의를 표시한 것이기에 넓은 품으로 포용해 주기를 촉구한다”고 했다.

우리 정부는 세계 권위주의 부상에 맞서기 위해 창설된 민주주의 정상회의 제3차 행사를 다음달 개최한다. 민주주의 정상회의 개최국다운 품격을, 정치적 반대자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보여 주기를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