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뺐는데 묵직하고, 무심하게 대사를 뱉는데 깊고 넓다. 영화 ‘파묘’는 배우 최민식(62)의 내공을 새삼 확인하게 만드는 신작이다. 최민식은 이 작품에서 노련한 풍수사(지관) 상덕을 연기한다. 묫자리의 흙을 한 줌 짚어 맛보고, 남들은 모르는 세계의 이면을 안다는 듯 먼 데를 응시하는 눈빛은 보는 이를 절로 끌어들인다.
22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최민식의 말에서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존재감’의 비결을 엿볼 수 있었다. 그는 “‘파묘’에 등장하는 네 명의 캐릭터 중에서 (내가) 도드라져도 안 되고 모자라도 안 되고 균형추를 맞추는 데 주안점을 뒀다”고 했다.
‘파묘’는 ‘검은 사제들’(2015), ‘사바하’(2019)를 만든 장재현 감독의 작품이다. 풍수사와 젊은 무속인 2명, 장의사까지 4명이 한 집안에 대물림되는 기이한 병을 해결하려 파묘, 즉 무덤을 파서 화장하려다 사건에 휘말린다.
“상덕은 40년간 땅 파먹고 살아오면서 속물근성도 있지만 그래도 마지막에는 지켜야 할 건 지켜요. 이게 마음에 들었어요. 이걸 안 지키면 지관이라고 할 수 없죠. 그 직업인으로서의 양심은 최후의 보루죠.”
직업인으로서 장인 정신이라면 최민식을 넘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박찬욱 감독이 그를 두고 ‘배우가 아니었다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 진정한 배우’라고 칭찬했을 만큼 최고 중의 한 명으로 인정받는다. 최민식은 “과찬”이라며 “쑥스러운데 이제는 (연기가) 생활이자 제 삶이 됐다”고 했다. 그는 “(이제 와) 다른 일을 하려 해도 이력서 넣으면 받아주겠나, 자영업 하자니 겁난다”며 “그래도 딴 데 한눈팔지 않고 한 길을 걸어왔다는 점 하나가 대견해서 저 자신에게 바나나우유 하나 주고 싶다”고 몸을 낮췄다.
그는 후배 배우들에게 ‘예쁜 거 뽐내고 싶은 허영도 좋지만’이라고 단서를 달며 “너무 그게 주가 되지 말고 배우라는 직업 자체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나한테 ‘이걸 허영으로 하는 건가, 진짜 이 일을 좋아서 하나’ 솔직하게 물어보라”고 조언했다.
최민식은 “일만 생각하고, 쓸데없는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아서” 소속사나 매니저도 없이 다닌다고 했다. ‘연기 장인’인 그는 아직도 “내가 더 잘 표현해낼 수 있었을 텐데 이걸 못 채웠을까 하는 자책과 후회, 반성이 매번 반복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