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들의 집단 진료 거부 3일차인 22일 서울 주요 대형병원들은 수술과 진료 일정을 줄이고 입원 병동을 비우는 등 ‘의료 공백’에 따른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파업 여파로 ‘빅5’ 병원의 문턱이 높아지면서 2차 병원과 공공병원에도 연달아 업무가 가중되는 상황이다. 전공의 공백을 메우고 있는 전임의(펠로)와 교수 등 대체인력이 소진되면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 교수는 이날 “2월까진 어떻게 버티겠지만 3월부턴 여유가 없을 것”이라며 “현재로선 전임의와 교수를 총동원해 문제가 생기지 않게 관리하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서울대병원의 한 간호사는 “응급실과 중환자실은 펠로랑 4년 차 레지던트가 있어 아직은 큰 어려움이 없다”면서도 “파업이 길어져 조기 퇴원하는 환자들이 많아지게 되면 상황이 복잡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다른 대형병원 수술실 간호사도 “이번 주 월요일부터 원래 잡혀 있던 수술들이 취소되고 평소의 10~20% 수준의 수술만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전공의 파업으로 불붙은 의료대란은 상급종합병원 등 대형병원에서 2차 병원으로 옮겨붙고 있다. 광주의 한 2차 병원 응급실을 찾은 60대 김모씨는 “일을 하다가 손을 다쳐 병원을 가야 하는데 전공의들 집단사직으로 제대로 진료를 받지 못할까 봐 집 부근의 2차 병원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전남대병원과 조선대병원 앞에도 다른 병원으로 옮겨가는 환자들로 북새통이었다. 3년째 대학병원에서 폐암 치료를 받고 있는 박모씨는 “2차 병원으로 옮겨 입원해야 진료와 처방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3차 병원의 대안이 된 2차 병원 입원실도 포화 직전이다. 2차 병원 한 관계자는 “며칠 사이 대학병원에서 옮겨오는 환자들로 중환자실에 비어있는 병상이 없다”며 “의료대란이 장기화될 경우 중형병원도 환자들을 소화하기 힘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외래 항암 치료를 받으려고 서울대병원을 찾은 60대 A씨는 “4시간을 기다리라고 한다”며 “일정이 밀리진 않아서 다행이지만 대기시간이 너무 길다”고 말했다.
의료공백을 막기 위해 서울시는 이날부터 서울 8개 시립병원 내과·외과 등 필수진료 과목의 진료시간을 오후 6시에서 오후 8시로 연장했다. 서울의료원과 보라매·동부·서남병원 응급실은 24시간 운영한다.
전공의 파업 장기화로 사망 등 중대 피해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세브란스병원 응급실에서는 지난 19일에 말기 암 환자가 사망한 사실이 알려지며 ‘전공의 공백’에 따른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다만 이 환자의 경우 말기 암으로 ‘터미널 케어(말기 암 환자 임종 케어)’를 받던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진료 거부와 연관된 ‘뺑뺑이’로 인한 사망과는 차이가 있다는 게 병원 측의 설명이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임종을 앞둔 말기 암 환자의 사망은 의료진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며 “진료 거부가 장기화할수록 살릴 수 있었던 환자였냐, 소생 불가능한 환자였냐를 놓고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이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