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칩 주도권’ 한국·대만서 미국·일본으로 회귀? [뉴스분석-차세대 칩 전쟁 본격화]

AI 시대 본격화… 시장 지각변동

인텔 “아시아 생산량 50%로 낮출 것”
日, TSMC 구마모토 공장 24일 개소
中 SMIC, 5나노 생산라인 구축 성공

인텔의 이번 1.8나노(㎚·10억분의 1m) 공정의 양산 계획과 오는 24일 일본의 TSMC 구마모토 공장 준공에 한국과 대만이 주도권을 갖고 있던 반도체 산업의 키가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다시 미국·일본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애초 1970년대까지는 인텔을 비롯해 IBM, 텍사스인스트루먼트 등 미국 기업들이 반도체 시장에서 압도적인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멀리 앞서가는 미국 기업들의 뒤를 유럽과 일본 기업들이 따라가는 형태였지만 1980년대 들어서자 일본 기업의 성장이 두드러졌다.

 

오일 쇼크 이후 미국 반도체 업계가 주춤한 틈을 타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은 일본 기업들이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시장을 평정한 것이다. 도시바, 히타치, 후지쓰 등 일본 반도체 업체들은 1990년대 초까지 호황을 누렸지만 미국 정부의 개입으로 전성기가 끝나게 됐다. 결국 1986년 이후 세 차례에 걸친 미·일 반도체 협정으로 일본의 반도체 산업은 힘을 잃었고 이후 다시 미국으로 주도권이 넘어갔다. 이런 틈을 타 한국과 대만이 반도체 업계에 새로운 강자로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2000년대 들어서는 삼성전자와 TSMC의 성장세가 가파르다.

 

일본은 반도체 기업들이 퇴장한 자리를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위주로 채웠지만 최근 미·중 패권 경쟁 속에 반도체가 무기화하고 코로나19 확산 때 반도체 공급 부족을 겪으면서 정부 주도로 반도체 육성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다.

사진=EPA연합뉴스

인텔은 공개적으로 아시아를 저격하며 ‘미국 반도체의 시대’를 예고하고 나섰다. 반도체 생산 비중을 미국·유럽 50%와 아시아 50%로 재편할 것이라고 밝힌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서도 “30년 전 미국과 유럽이 반도체 생산의 80%를 차지했는데 지금은 아시아가 그렇다”며 “이런 구도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언급했다.

 

반도체 자립을 꿈꾸는 중국의 추격도 만만치 않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 반도체 기업 SMIC가 올해 안에 5나노 생산라인을 가동해 화웨이가 설계한 차세대 스마트폰 프로세서를 생산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SMIC는 미국의 반도체 장비 수출 제재가 시작되기 전에 비축해 둔 기존 장비들로 5나노 전용 생산라인을 구축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전해졌다.

 

5나노 칩은 최첨단으로 꼽히는 2나노나 인텔이 생산하게 될 1.8나노보다는 뒤처진 기술이지만 이번 사례는 미국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중국 반도체 산업이 자립을 향해 나아간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으로 풀이된다. 화웨이는 지난해 8월에도 제재를 뚫고 7나노 프로세서를 탑재한 스마트폰 메이트60 프로를 출시해 세계를 놀라게 한 바 있다. 소식통들은 FT에 “차세대 스마트폰 칩이 충분히 성공적이라고 판단되면 화웨이의 최신 AI 프로세서인 ‘어센드 920’도 SMIC의 5나노 공정으로 생산하게 될 것”이라고 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