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기의시대정신] 분노의 포도가 무르익고 있다

이념·세대·남녀 편가른 증오·혐오
자연스러운 분노로 일상에 스며들어
총선 앞둔 정치인 잇속 찾는 사이
극단에 몰리는 이들은 분노할밖에…

‘장수’라는 이름의 고양이가 있다. 30초 남짓 유튜브 쇼트폼 영상의 주인공이다. “장수야 장수야” 여성의 부름에 고양이가 “야옹 야옹” 대답하는 게 전부다. 그런데 조회 수가 1600만이다. 여느 고양이 영상과 다른 점은 영상 아래 1만7000개 댓글이다.

“장수야. 취업 준비 너무 힘들다. 깜깜한 동굴 속을 걸어가는 느낌이야. 얼른 탈출하고 싶다.” “장수야. 형 일하다가 손가락이 많이 잘렸다. 우울한데 장수 생각나서 보니까 또 웃음이 난다.” “장수야. 사기당한 거 이제 빚 이천 남았다. 나이 삼십 먹고 가진 건 없지만 장수 보고 힘낸다.”

 

김동기 국가미래연구원 연구위원·전 KBS PD

누가 시작한 건지 왜인지도 알 수 없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장수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했고, 수년 전 올라 온 영상에 어제도 오늘도 댓글이 쌓이고 있다. 고양이 ‘장수’를 안은 여성이 따뜻한 목소리로 묻는다. “장수야. 화났어?” 이 질문이 답답한 청춘들의 마음을 건드린 게 아닌가 싶다. 자존감을 갉아먹는 취업난과 도통 나아질 기미가 없는 근로환경과 사회적 약자를 골라 집요하게 착취하는 범죄에 분노를 삼켜온 이들이 30초 영상 아래 설움을 쏟아낸다. 팍팍한 하루를 보내고 막막한 내일을 고민하다 댓글 한 줄을 쓰고 잠이 든다.



2월 극장가는 개들이 나오는 영화가 눈길을 끌었다. ‘도그데이즈’와 ‘도그맨’이다. 한국 영화 ‘도그데이즈’의 인물들은 모두 각자의 이유로 불행하다. 그 모든 불행이 귀여운 반려견들로 인해 일거에 해결되는 판타지를 보며 관객들은 두 시간 동안 각박한 현실을 잊는다. 뤽 베송 감독의 신작 ‘도그맨’은 처절하다. 불합리한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주인공의 분노 또한 폭력으로 전이된다. 사람에게 입은 지독한 상처를 위로하는 건 개들뿐이다. “불행이 있는 곳마다 신은 개를 보낸다.” 시인 라마르틴의 문장으로 시작한 영화는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 ‘군중(La Foule)’에서 폭발한다. “나는 싸우고 또 싸웠지만 내 목소리는 남들 웃음소리에 묻혀버려요. 나는 고통과 절망과 분노로 비명을 지르며 울어요.”

많은 이들이 아프고 외롭다. 고양이에게 토로하고 개에게 의지할 만큼. 한국 사회에 쌓이고 있는 분노는 두 갈래 길로 향한다. 첫 번째 길은 분노가 침잠하여 만들어진 절망이다. 경쟁에 밀린 수험생이, 전세 사기에 내몰린 청년이, 고독과 빈곤에 지친 노인이 쏜 분노의 화살은 자기 자신을 향한다. 한국의 자살자 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2배 이상 높다.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수년째 이어오고 있다. 살아남은 자들은 아이를 낳지 않는다. 올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6명대에 접어들 거라고 한다. OECD 평균의 절반도 안 된다. 인간은 ‘이기적 유전자’의 명령에 따르는 충실한 기계일 뿐이라고, 그 명령은 ‘생존과 번식’이라고 리처드 도킨스가 주장했지만, 한국 사회 절망의 늪은 유전자의 명령도 맥을 못 출 만큼 깊고 어둡다.

분노가 향하는 또 다른 길은 증오다. 차오른 분노는 외부로 분출되며 공격 대상을 찾는다. 이념이건 세대건 남녀건 할 것 없이 편을 갈라 퍼붓는 증오와 혐오가 임계점을 넘었다. 정치인은 막말을 쏟아내고, 과몰입한 유권자는 정치인에게 흉기를 휘두른다. 정부와 의사의 강 대 강 대치로 인한 피해는 힘없는 환자에게 전가되고, 이로 인한 분노와 증오도 극에 달하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는 적개심을 선동하느라 바쁘다. 분노는 자연스레 일상에 스며들었다. 요즘 십대들은 정신과 병원에서나 쓸 법한 ‘분노조절장애’라는 용어를 ‘분조장’이라고 줄여 유행어처럼 쓴다.

분노의 시대를 살고 있다. 거친 덤불을 헤치고 들여다보면 상처 입은, 외로운 개인들이 보인다. 이들이 개와 고양이에게 설움을 토해내는 동안, 서로를 향해 분노를 휘두르는 동안, 끝내 분노의 창을 집어 자기 가슴에 꽂는 동안 우리 사회가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 가장 사악한 건, 이 사회를 움직이는 자들이 오히려 이들의 분노와 절망을 이용하고 증오와 갈등을 부추기며 자신의 이익을 챙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뉴욕을 상징하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1931년 세계 최고 높이로 완공됐다. 빌딩이 하늘을 찌르며 솟아오르는 동안 대공황이 찾아왔고 그 그늘에는 극단에 몰린 사람들이 있었다. 농촌에는 탱크처럼 밀고 들어온 트랙터가 농민들의 땅과 고향을 빼앗았다. 많은 이들이 머나먼 서부, 이주노동자로 내몰렸다. 그 좌절과 고통을 담은 소설이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다. “사람들의 눈 속에 패배감이 있다. 굶주린 사람들의 눈 속에 점점 커져가는 분노가 있다. 분노의 포도가 사람들의 영혼을 가득 채우며 점점 익어간다. 수확기를 향해 점점 익어간다.” 소설의 한 대목이 한 세기를 지나 한국 사회에서 다시 읽힌다. 역사상 유례없이 잘사는 나라가 된 한국이 폭죽을 터트리는 동안, 많은 이들이 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불청객이 되어 서성이고 있다. 총선을 앞둔 정치인들이 저마다의 잇속 찾기에 분주한 사이 그들의 머리 위에는 분노의 포도가 무르익고 있다.

 

김동기 국가미래硏 연구위원 전 KBS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