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를 만나는 시간보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2016년 20대 총선 당시 강원도 홍천·철원·화천·양구·인제에서 당선된 새누리당 황영철 의원은 방송에 나와 선거 운동의 어려움을 이렇게 토로했다. 5개 군을 합친 그의 선거구는 5697㎢로 서울시의 10배, 최소 면적 선거구인 서울 동대문을의 948배에 달했다. 군청 소재지만 돌아다니는 데 무려 일곱 시간이 걸렸다. 이 지역 후보들은 오일장이 서는 장터나 유권자가 모일 만한 행사장을 찾는 ‘장돌뱅이 선거 운동’을 펼쳐야 했다.
강원도 태백·횡성·영월·평창·정선 지역구도 사정은 비슷했다. 총선 후보들이 군청 소재지만 도는 데 6시간 이상 걸렸다. 국회의원들은 4년 임기 동안 승용차 주파 거리가 수십만 ㎞에 달했다는 푸념도 늘어놓는다. 전남 해남·완도·진도 지역구는 섬이 100개가 넘다 보니 후보들이 인구가 적은 지역은 아예 선거 운동을 포기했다. 30분이면 웬만한 요지를 돌 수 있는 서울 도심 지역구와는 공간적 범위에서 너무나 큰 차이를 보인 것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가 지난해 12월 5일 국회에 제안한 총선 선거구획정안 초안에도 초대형 ‘공룡 선거구’가 등장했다. 강원도 속초시와 철원·화천·양구·인제·고성군이다. 이들 6개 시·군 면적은 약 4900㎢로 서울의 8배가 넘는 데다 중간에 태백산맥이 놓인 기형적인 형태다. 경기 북부에는 서울 면적의 4배에 달하는 ‘포천·연천·가평’ 선거구가 생긴다. 여야는 22대 총선 선거구획정안의 국회 처리 협상 ‘데드라인’인 어제도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여야가 끝내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 획정위 원안대로 4·10 총선을 치르게 된다.
선거구는 인구 비례를 따져야 하지만 면적과 지세, 교통 등 다른 변수도 고려해야 한다. 같은 선거구의 유권자는 문화적· 정서적 동질성을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토록 넓은 선거구를 내버려두는 것은 유권자의 선거 무관심, 정치 무관심을 방치하는 것과 다름없다. 개선책으로 권역별 비례 대표제 도입 필요성이 제기되고, 정주 인구뿐 아니라 ‘경제 인구’를 포함하는 방법도 거론된다. 정치권이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