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해 주요 병원 전공의 1만명가량이 집단사직하고 병원을 이탈한 가운데, 이들과 이탈을 부추긴 책임자들에 대한 행정처분과 사법처리 절차가 본격화하고 있다.
28일 의료계 등에 따르면 정부는 전날 의료법 위반 등 혐의로 대한의사협회(의협) 관계자 등 5명을 고발한 데 이어 전공의 복귀 시한을 하루 앞둔 이날 진료유지명령 및 업무개시명령을 수차례 어긴 전공의를 중심으로 행정처분 대상자 선별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전공의 사직 지침’ 등을 전달해 전공의 집단이탈을 부추기거나 조장한 데 대한 수사도 이미 진행되고 있다.
◆전공의들 행정처분 절차 준비
이번 사태와 관련한 행정처분·사법처리 절차는 크게 세 갈래로 진행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이날 각 수련병원 전공의 대표자 등의 집을 직접 찾아 업무개시명령을 했다. 우편이나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 등으로 현장에 돌아올 것을 명령한 데 이어서, 송달 효력을 확보하기 위해 한발 더 나아간 조치를 한 것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전공의 대상 업무개시명령은 현장 교부, 문자, 우편 송달을 병행한다”며 “우편송달 시 폐문·부재로 수취가 안 된 경우가 있어 직접 교부 송달하고 있다”고 밝혔다.
행정절차법에 따르면 송달 장소에서 대상자를 만나지 못했을 때는 동거인 등 대리인에게도 문서를 교부할 수 있다. 이들이 정당한 사유 없이 송달을 거부하면 그 사실을 기록하고, 문서를 송달 장소에 놓아둘 수 있다.
복지부는 사직서를 내고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 9267명 가운데 업무개시명령을 어긴 5976명가량에 대해 불이행확인서를 징구했다. 29일을 복귀 시한으로 정한 만큼 3월4일부터는 행정처분을 위한 법적 요건을 갖추는 작업에 본격적으로 나설 방침이다.
집단사직과 이탈에 단순 동조한 전공의들의 경우 사법처리보다 행정처분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의료법에 따르면 의료진이 집단으로 진료를 거부하면 업무 개시를 명령할 수 있는데, 여기에 따르지 않으면 1년 이하의 자격 정지나 3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개정 의료법에 따르면 어떤 범죄든 ‘금고 이상의 실형·선고유예·집행유예’를 선고받았을 때 의사 면허를 취소할 수 있다.
◆“교사·방조자 최우선 사법처리”
정부는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을 교사하고 방조한 자는 우선적으로 사법처리한다는 방침이다. 경찰이 대한의사협회(의협) 지도부를 중심으로 수사하겠다고 방침을 정한 것도 정부의 의도를 보여준다.
금명간 피고발인 출석 요청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윤희근 경찰청장이 ‘신속한 수사’를 강조한 만큼 이들이 출석 요청에 불응하면 곧바로 체포영장을 신청하는 수순을 밟을 수 있다.
복지부는 전날 김택우 의협 비대위원장, 주수호 의협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 박명하 비대위 조직강화위원장,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 노환규 전 의협 회장을 의료법 59조와 88조에 따른 업무개시명령 위반, 형법에 따른 업무방해, 교사 및 방조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복지부는 이들이 전공의들의 집단사직을 지지하고, 법률적으로 지원함으로써 집단행동을 교사하고 방조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전공의들이 소속된 수련병원 업무가 방해받은 점도 고발 이유다. 의협은 “끝내 대화와 타협이 아닌 무리한 처벌로 의료 현장을 파국으로 몰아가는 행태”라고 규탄했다.
전공의 단체 집행부도 사법처리 대상이 될 수 있다.
앞서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원회(서민위)는 21일 의협 집행부 외에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대위원장을 의료법 위반·협박·강요 등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의협 집행부 고발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경찰청 공공수사범죄수사대는 서민위 고발 사건을 병합할지 검토하고 있다. 각 수련병원의 전공의 대표들도 집단사직 직전 동료들의 사직을 독려한 사실이 확인되면 사법처리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인터넷 ‘선동 글’도 엄단
정부는 인터넷에 떠돈 게시자 불상의 ‘선동 글’도 전공의들의 집단이탈을 부추겨 병원 업무에 지장을 초래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앞서 서울 강남경찰서는 22일 의사나 의대생이 사용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메디스태프’의 서초구 서초동 소재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경찰은 회원 정보, 게시자 인적사항, 접속 기록을 찾기 위해 서버, PC, 노트북 등 자료를 확보했고 이를 바탕으로 해당 게시글의 작성자 IP 추적을 해왔다. 당시 인터넷에는 ‘[중요] 병원 나오는 전공의들 필독!!’이라는 제목의 글이 확산했다. 작성자는 “인계장 바탕화면, 의국 공용 폴더에서 (자료를) 지우고 세트오더도 다 이상하게 바꿔 버리고 나와라. 삭제 시 복구 가능한 병원도 있다고 하니 제멋대로 바꾸는 게 가장 좋다”고 조언했다.
경찰은 이 사이트에 올라온 전공의 집단행동 지침 글이 병원 업무에 지장을 줄 수 있어 업무방해 혐의가 있다고 보고 있다. ‘진료보조(PA) 간호사가 전공의 대신 업무를 수행하지 못하도록 하라’거나 ‘사직 의사를 명확히 하기 위해 짐도 두지 말고 나오라’는 등의 내용도 담겼다.
경찰은 의사를 가장해 ‘복지부 공무원과 가족에 복수하겠다’는 협박 글 등 의료대란 과정에서 갈등을 조장하는 글의 출처도 추적하고 있다. 최근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 ‘복지부 공뭔 ○끼들 꼭 봐라’란 제목의 글 등 의사들을 악마화하는 내용이 여럿 게시됐는데, 작성자가 실제 의사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