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턴 시커/사이먼 배런코언/강병철 옮김/디플롯/2만4800원
알은 네 살이 될 때까지 말을 하지 않았다. 말문이 트인 뒤에는 “왜, 왜, 왜”를 달고 살았다. 특이한 점은 또 있었다. 알은 토머스 그레이의 ‘시골 묘지에서 읊은 만가’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낭송했다. 평생 그랬다.
교사들은 알의 질문 세례에 짜증을 냈다. 한 교사는 알의 뇌가 “맛이 갔다”고 했다. 참다못한 엄마는 열한 살이 되자 아들을 집에서 가르치기로 결심했다.
학교를 벗어난 알은 도서관에서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반드시 맨 아래 서가의 마지막 책부터 읽기 시작해 위로 올라가며 한 권도 빠뜨리지 않고 섭렵했다. 열다섯 살이 되자 알은 모스 부호에 푹 빠졌다. 모스 부호는 ‘패턴에 관한 궁극의 언어’였기 때문이다.
저자는 “모든 자폐인이 천재라는 말은 아니다”라며 “하지만 자폐인 중 고도로 체계화하는 사람이 일반 인구보다 훨씬 높은 빈도로 나타나며, 그런 사람들은 새로운 패턴을 파악하는 재능이 있기에 발명가가 될 잠재력이 있다”고 말한다.
반대로 체계화에 능한 이들에게도 자폐 성향이 많을까. 케임브리지대학이 1000명이 넘는 학생에게 자폐 스펙트럼 지수(AQ) 검사를 한 결과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전공 학생들이 인문학 전공생보다 자폐 특성을 많이 나타냈다. 네덜란드의 실리콘밸리인 에인트호번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네덜란드 3개 도시에서 어린이 6만여명을 조사해 보니 에인트호번에서는 어린이 1만명 중 229명이 자폐 진단을 받았다. 다른 두 도시에서는 이 수치가 각각 84명, 57명에 그쳤다.
고도로 체계화를 추구한 사람들은 종종 자폐인으로 여겨졌다. 예술가 앤디 워홀,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헨리 캐번디시는 자폐인으로 알려졌다. 실제 ‘체계화 메커니즘’에 능한 에디슨은 공감 능력이 제한적이었다. 일례로 그는 콘크리트로 만든 집을 설계한 후 대량생산이 가능한 콘크리트 가구로 집을 채웠다. 에디슨은 이 ‘놀라운’ 아이디어를 팔아 보려고 7년이나 애썼다.
물론 고도의 체계화를 추구하는 것과 자폐가 동의어는 아니다. 고도로 체계화를 추구한다고 자동으로 뛰어난 발명가나 음악가, 운동선수가 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천재든 자폐인이든 ‘만일-그리고-그렇다면’ 패턴을 끊임없이 실험하는 데 능하기에, 획기적인 결과를 발견해 어떤 분야에서든 두각을 나타낼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논증을 통해 저자가 궁극적으로 강조하는 점은 ‘인간의 뇌 유형은 다양하다’이다. 자폐인의 마음은 오랜 진화 과정에서 나타난 자연적 뇌 유형의 하나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자폐인을 장애나 비정상이 아닌 ‘전혀 다른 뇌 운영체제’를 가진 이들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이들이 잠재력을 피우려면 환경이 중요하다. 덴마크의 한 자폐인은 “우리는 바닷물 속에 던져진 민물고기와 같다”며 “우리는 민물에 넣어 주면 잘살아가고 번성할 것”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