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하면 감자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강원도를 감자국(國)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해외에서 반응은 다르다. ‘의료용 전자기기’를 가장 먼저 꼽는 외국인이 많다. 국내에서는 생소하지만 ‘메이드 인 강원’ 의료용 전자기기는 지난 10년간 도 수출 품목 1위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주력 상품이다.
한국무역협회 강원지역본부가 발표한 ‘2023년 강원지역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도가 해외에 판매한 의료용 전자기기는 6400억원에 달한다. 도 전체 수출액(3조6217억원)의 17%에 해당한다. 강원지역 2위 수출품목인 면류(3444억원)의 두 배 수준이다.
강원발 의료용 전자기기의 수출 성장세는 가파르다. 수출 첫해인 2000년 20억400만원에서 2015년 약 4000억원으로 늘더니 2021년엔 5150억원으로 증가했다. 지난해(6386억여원)까지 포함하면 매년 10% 이상 급성장하고 있는 셈이다. 올해 강원지역 의료용 전자기기 수출액은 사상 처음 70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기대된다.
강원도와 원주시, 테크노밸리가 힘을 모아 구성한 ‘강원 의료산업 수출지원단’도 현지에서 혁혁한 성과를 거뒀다. 우선 중동·아프리카 의료기기·영상진단기기무역협회(UAE Mecomed)와 교역확대 업무협약(MOU)을 이끌어내 중동 진출 교두보를 한층 두텁게 했다. 이 자리에서 라미 라자브 협회 회장은 “중동 기업들은 강원도 의료용 전자기기를 상당히 신뢰하고 있다.
수출지원단은 현지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세계한인무역협회 두바이지회, UAE 한인회와 잇따라 만나 전폭적인 지원 약속을 받아내기도 했다. 지원단은 지역 기업들의 고민인 인허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KTC) 두바이지사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두바이 무역관을 방문해 인허가 전략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출 다변화로 안정성 확보 꾀해
강원도와 원주시가 중동 공략에 적극적인 이유는 시장 잠재력이 상당하다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 의료용 전자기기 시장에서 중동이 차지하는 비율은 0.9%(4조1400억원)에 불과하다. 하지만 중동지역 인구 및 만성질환 환자가 꾸준히 늘어나는 등 성장 가능성이 엿보인다는 게 시 분석이다. 아울러 중동은 제조업 기반이 빈약해 의료기기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2030년까지 건강관리 산업에 약 85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히는 등 투자에도 적극적인 상황이다. 국내 의료기기 생산업체에게는 중동이 ‘기회의 땅’인 셈이다.
해외 시장 다변화를 통해 수출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중동 시장을 확실한 해외 시장 진출 교두보로 만드는 게 긴요한 상황이다. 지난해 도 의료용 전자기기 최대 수출국은 43억5500만원 상당을 수출한 인도이다. 이어 러시아(42억3500만원), 미국(41억9500만원), 중국(34억7300만원), 이탈리아(31억6600만원) 등의 순이었다. 문제는 이들 국가에 대한 수출 물량이 매년 들쑥날쑥해 수출 안정성에 상당한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지난해 대미 수출액은 전년보다 23.1% 줄었다. 2022년 대중, 대러 수출액은 전년 대비 각각 51.3%, 33.8% 감소했다.
원주시 관계자는 “원주시와 테크노밸리는 의료용 전자기기 수출 다변화를 위해 올해로 15년째 국제의료기기전시회에 참여하고 있다”며 “중동의 경우 미용과 내시경 분야 의료용 전자기기에 특히 관심이 높아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오는 5월 베트남에서 열리는 메티팜 전시회에도 참여한다”고 말했다.
◆2000년 첫 수출 20억원, 20년새 300%↑
원주에서 의료용 전자기기 산업이 태동한 건 1990년대부터다. 원주에 뿌리를 두고 있던 기업들과 지역대학이 연계해 자생적으로 규모를 키웠고 강원도와 원주시가 “세계 최고의 의료용 전자기기 산업단지”로 육성하고자 재정을 투입하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2003년 연세대 원주캠퍼스 내에 첨단 의료기기 테크노타워가 건립되고 태장농공단지에 원주의료기기 산업기술단지가 준공됐다. 같은 해 재단법인 원주의료기기테크노밸리가 설립돼 관련 산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담당하기 시작했다.
내수 시장에 머물던 지역기업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때는 2000년이다. 첫 수출액은 20억400만원이었다. 이듬해 수출 규모는 10배 이상 성장한 564억1900만원을 기록했다. 2002년 해외 수출액은 639억9400만원을 기록하는 등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김광수 테크노밸리 원장은 “의료용 전자기기 산업은 사람의 건강, 생명에 직결되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인증이 강화되는 추세”라며 “원주시는 발 빠르게 대응해 2022년부터 국내에서 유일하게 국제인증센터 사업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원강수 원주시장 “의료용 기기, 미래 먹거리…각종 지원센터 건립 박차”
“강원도 미래 먹거리 산업인 의료용 전자기기를 적극 육성하겠습니다.”
원강수(사진) 원주시장은 6일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윤석열정부는 바이오·디지털헬스 글로벌 중심국가 도약을 국정과제로 선정하고 육성지원 5개년 종합계획을 수립하는 등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시는 여기에 발맞춰 의료용 전자기기 산업 고도화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시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업은 ‘친환경 디지털헬스케어 산업지원센터’ 건립이다. 국비 141억원을 포함한 총 250억원을 투입해 원주기업도시 내 의료기기종합지원센터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들어설 예정이다. 2025년 4월 준공이 목표다. 센터에는 의료용 전자기기 기업이 입주할 수 있는 공간과 창업전용공간 등이 갖춰질 전망이다. 시는 추가적인 기업 유치를 위해 동화첨단의료기기산업단지에 공공임대형 지식산업센터 건립도 추진 중이다.
원 시장은 “시는 사물인터넷(IoT)을 기반으로 기술력을 가진 기업들이 원주에 모여들도록 해 서로 협업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며 “다양한 센터 건립은 그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미래 의료용 전자기기 시장은 누가 양질의 데이터를 확보하는지, 확보된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싸움이 될 것”이라며 “원주를 기반으로 한 기업들이 데이터를 공유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술을 개발한다면 머지않아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이 탄생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기업 유치 이외에 시가 공을 들이고 있는 부분은 해외 시장 인허가 획득이다. 원 시장은 “의료용 전자기기 산업은 인류의 건강과 직결되는 분야인 만큼 해외시장 규제가 점차 까다로워지고 있다”며 “기업이 기술을 개발한다고 해도 인허가를 받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는 전국 최초로 설립된 의료기기 국제인증센터를 통해 인허가 상담, 비용 지원 등을 지원하고 있다”며 “단계적으로 경쟁력을 높여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원 시장은 “올해는 대한민국 의료기기 산업 주도권을 공고하게 다지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