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명’을 넘길 것인지가 관심사였던 대학의 의대 정원 신청 규모가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은 3400여명에 달하면서 의료계가 술렁이고 있다. 교수와 재학생 등 의대 구성원 반발이 큰 상황이지만, 대부분의 대학은 늘어난 정원을 한 명이라도 더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1차 수요조사 때보다도 많은 인원을 써낸 분위기다. 정원을 많이 신청했다고 실제 정원이 많이 배분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신청 규모로 교육부에 대학의 의지를 보여 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학들이 의대 정원 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선 모양새여서 정부의 2000명 확대안에도 힘이 실리게 됐다.
◆정부도 예상 못 한 대규모 신청
5일 교육부에 따르면 전날까지 진행한 의대 정원 수요조사에서 40개 대학은 총 3401명의 정원을 신청했다. 지역별로는 서울 소재 8개 대학 365명(10.7%), 경기·인천 소재 5개 대학 565명(16.6%), 비수도권 27개 대학 2471명(72.7%)이다. 비수도권 의대에서 신청한 인원만으로도 정부의 증원안(2000명)을 넘어선다.
◆대학들 “정원 한 명이라도 더”
대학들은 정원을 확보하기 위해 ‘일단 많이 신청하고 보는’ 기조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는 증원 신청 규모만으로 정원을 배분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지만, 정원 배분 시 정원 신청 규모를 고려하겠다는 입장이다. 또 “정원 신청을 하지 않은 대학에 임의로 배정하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강조해 왔다. 대학 입장에서는 정원을 조금만 신청하면 추후 정원 배분 시 많은 인원이 배정되기 어려울 것이라 느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의대 정원 확대가 약 30년 만에 추진되는 것인 만큼 대학가에선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 기회를 얻기 힘들 것이라는 위기감이 높았다. 정부가 밝힌 정원 배분 우선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 서울 지역 8개 대학이 큰 기대가 없는 상태임에도 365명을 써낸 것도 이런 이유로 추정된다. 한 수도권 대학 관계자는 “의대 쪽에서 심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학교 차원에서는 이번이 아니면 (의대 증원이) 반세기가 걸려도 될지 말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특히 비수도권 대학의 경우 학령인구 감소로 매년 모집난이 심화하는 상황이어서 의대 정원 확보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현재 대입에서는 ‘의대 쏠림’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쓰일 정도로 의대는 대학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학과로 꼽히는 데다가 의대가 있는지에 따라 대학 위상이 달라지기까지 한다. 교육부 관계자는 “비수도권 대학들은 충원율 확보에 문제가 없고 학교 위상에도 큰 도움이 되는 학과를 이렇게 늘릴 기회가 자주 오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번 조사가 각 대학의 실제 수요를 더 정확하게 반영했을 것이라며 2000명 확대 추진 방침을 재차 강조했다. 이날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지난번 조사는 예비조사 성격이고 이번은 본조사”라며 “각 대학이 더 신중하게 검토하고 논의해 결정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조사는 단순 수요조사였지만 이번 조사는 실제 증원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각 대학이 더 정확한 수치를 제공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또 비수도권 증원 신청에 대해서는 “지역의료 및 필수의료 강화에 대한 강력한 희망을 표시한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박 차관은 “(배분은) 비수도권의 지역 중심으로 하고, 지역 거점병원 역할을 하는 곳에 우선순위를 두겠다”면서 “의료교육의 질을 확보하기 위한 소규모 의대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주수호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는 의대 학장이 1명의 증원도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그 외 대학 대부분이 많아야 10% 증원을 얘기했음에도 대학 본부와 총장 측이 일방적으로 많은 수를 정부에 보고했다”며 “외부의 압력이 있었는지 밝혀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의대 정원 신청은 대학의 자율적인 의지에 기반한다”며 “증원 신청을 안 하면 불이익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