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쇳물빼기’ 기술이 90% 이상 복원됐다. 1906년 이후 명맥이 끊겨 사라진 전통 토철 제련 기술이 19년의 연구 끝에 밝혀졌다.
울산 쇠부리복원사업단은 6일 “용광로가 아닌 흙가마에서 조선시대 방법 그대로 쇳물을 빼, 판 형태의 쇳덩어리(판장쇠)를 연속해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사업단은 해당 복원 기술을 5월 열리는 울산쇠부리축제에서 시연·공개할 예정이다. 쇠부리는 토철 등 철의 원료를 녹이고 다뤄서 가공하는 모든 제철작업을 일컫는 말이다.
쇠부리기술 복원을 위한 연구는 2005년부터 시작됐다. 울산 북구에 있는 옛 제련소인 달천철장을 기리는 쇠부리축제가 열리면서다. 관련 학술회의가 진행되고, 쇠부리기술에 대한 연구가 이어졌다. 권병탁 전 영남대 교수의 발굴조사자료, 논문 등이 참고됐다. 권 전 교수는 1960∼1970년대 당시 생존해 있던 쇠부리기술자들을 직접 만나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일본의 고대 제철기술인 다타라와 가고시마 지역의 전통 제철방법 등도 비교·검토해 근거로 삼았다. 2016년부턴 ‘울산쇠부리복원사업단’을 꾸려 실험·연구를 하고 있다.
처음엔 원통형 모양으로 가마를 만들어 썼지만, 이후 실험에선 양 가장자리를 돌로 쌓고 안엔 잡석과 흙을 채워 넣은 사각 형태의 가마로 바꿨다. 이렇게 지난해까지 모두 9차례의 실험이 진행됐다. 9차 실험에선 쇳물을 가마 밖으로 흘려보내 연속해 판장쇠를 만드는 것까지 성공했다. 다만 녹은 쇳물이 판장쇠틀을 모두 채우지 못하거나 다 채우더라도 울퉁불퉁한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제대로 된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의미다. 기술을 90% 정도 복원했다고 말하는 이유다. 울산쇠부리복원사업단은 실험보고서에서 “이번 실험의 문제점을 검토·논의해 다음 실험에서 해결해 나가면 보다 신뢰할 수 있는 쇠부리기술 표준매뉴얼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쇠부리기술복원사업은 올해부턴 문화재청이 지원하는 미래무형유산 발굴·육성 사업 대상으로 선정돼 지원을 받게 된다. 복원사업단은 안정적으로 판장쇠를 생산하게 되면 이를 이용한 철기 제조에도 나설 계획이다. 정재화 쇠부리축제추진위원회 사무국장은 “쇠부리기술이 지방문화유산 단계를 거쳐 국가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많은 노력을 쏟아 달천철장에서 사용되던 쇠부리기술 복원에 나서는 건 달천철장이 동아시아 고대국가 형성기 철의 생산과 유통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유적이면서, 조선 후기 제철 중심지였다는 의미가 있어서다. 달천철장 부지가 도시 개발 예정 부지에 편입돼 없어질 위기에 처하자 고대 철 생산을 연구하는 일본인 노교수가 울산시장 앞으로 “철장을 보존해달라”는 내용의 편지와 일본학자들의 서명부를 보내왔을 정도다. 효종 8년인 1657년엔 이의립 선생이 이 철장을 재발견해 활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