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그림은 전통을 지키지만 서양의 감각을 적극 받아들입니다. 음식에 비유하자면, 서양의 재료와 향신료를 넣은 한정식이랄까. 수묵화와 수채화의 부드럽게 스며드는 투명함, 유화 못지않은 깊이와 질감을 동시에 드러내려고 노력합니다. 화가라면 누구나, 세상의 시류가 바뀌어도 기어이 남아 호평받는 그림을 꿈꾸겠지요. 쉼 없는 수련과 경험을 통해 겸재의 진경산수 정신을 이어받고, ‘오용길표 현대 진경산수화’를 완성해 나가는 데 천착하고 있습니다.”
작가 오용길의 그림을 보면 옹기(甕器)의 검박미와 자기(磁器)의 세련미가 동시에 스며난다. 친근한 일상에서 ‘삶의 진리’를 길어내듯, 고요한 일상은 그대로 명징한 화두의 해답을 품고 있다. “가슴속에 1만권의 책이 들어 있어야 그것이 넘쳐 나와 글과 그림이 된다”는 추사 김정희 선생의 말처럼, 그 역시 스치는 일상을 1만번 이상의 응시와 붓질로 화폭에 펼쳐냈으리라.
오용길이 다루는 주제는 크게 두 가지로, ‘봄의 기운’과 ‘계절의 향기’다. 특히 세상 여러 곳과 다양한 소재를 활용해 봄의 정경을 자주 그려낸다. 매화 못지않은 ‘봄의 전령사’로 빗댈 만하다. 산뜻하고 생동하는 기운으로 충만한 화면은 그의 작품이 지닌 ‘매력’이자 ‘마력’이다.
오용길은 최고수 수묵담채 화가다. 국내든 해외든 그에게 선택된 풍광은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받는다. 전에 없던 ‘현대 한국화’의 전기를 마련했다. 옛것으로도 충분히 새 화두를 완성해낼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이다.
그는 출발부터 달랐다. 27세였던 1973년 국전(國展)에서 문화공보부장관상을 받으며 거물의 잠재성을 드러냈다. 월전미술상, 의재 허백련 예술상, 이당미술상, 동아미술상 등 한국화가로서 받을 수 있는 상을 모두 섭렵했다.
‘그림에도 격이 있다’고 했다. 풍경이 지닌 진정한 본질적 가치를 화폭에 옮기려 평생을 바쳤던 겸재의 집념처럼, 오용길의 일상 풍경화에도 독창적인 해석의 결이 쌓여 있다. ‘21세기 겸재’라거나 ‘겸재 정선의 맥을 잇는 진경산수화의 대가’라는 별칭이 따라붙는 이유다. 특별한 꾸밈이 없고, 솔직하며, 유려한 그의 그림은 인간의 체온에 가장 가까운 온기를 지녔다.
20일까지 서울 강남구 신사동 청작화랑에 가면 따뜻한 계절을 앞당겨 누려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