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참외·곰팡이 딸기… 잇단 비에 농가 ‘울상’

겨우내 일조량 평년의 85% 그쳐
강수량 기상관측 이래 역대 최다
병해충 발생 빨라지고 작황 부진

저급 참외 평소보다 3배 급증
멜론·딸기도 썩거나 곰팡이 펴
“출하 코앞인데… ” 농민들 한숨만

“비라면 이제 지긋지긋하네요. 해가 들지 않아 참외가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있으니….”

지난 5일 경북 성주군 한 작은 마을에서 만난 농부 김모(62)씨는 한곳을 응시하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가 가리킨 곳은 참외를 재배 중인 비닐하우스다. 내부에 들어가 보니 푸릇푸릇한 잎 사이로 성인 주먹만 한 크기의 노란 참외가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전국 참외 생산량의 80%를 차지하는 성주군의 참외 농사는 보통 11월부터 시작하는데 이르면 이달 초부터 수확이 가능하다. 하지만 김씨는 올해 농사를 두고 “빛 좋은 개살구”라고 푸념했다. 하루가 멀다고 내린 잦은 비에 일조량이 줄어들면서 이른바 ‘물참외’라고 불리는 저급과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올해 성주 참외 저급과는 평년 대비 3배 이상 폭증한 상태다.



김씨는 “출하가 코앞인데 과육이 제대로 익지 않아 공판장에 팔지 못하는 게 수두룩하다”며 “하늘도 무심하게 오늘도 비만 계속 내리고 있으니…”라며 연거푸 한숨만 내쉬었다.

잦은 비로 농민들 가슴이 새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다. 일조량 부족으로 시설하우스 재배 작물의 발육이 저조한 데다 농작물의 적인 병해충 발생 시기가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7일 전남도에 따르면 나주시 일대에서는 일조량 부족으로 애써 가꾼 수확물을 출하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세지면에서 30여년간 멜론을 키워 온 김모(60)씨는 “지난해보다 햇빛 드는 날이 30%가량 줄어 멜론 크기가 작고 썩기도 한다”며 “이처럼 큰 피해를 본 것은 30년 만에 처음 겪는 일”이라고 푸념했다.

딸기 재배 농가 역시 지난 겨울 잦은 비로 시름이 깊다. 이모(51)씨는 “한창 딸기를 출하해야 할 시기이지만, 기형이 되거나 곰팡이가 슬면서 수확량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말했다. 특히 출하가 늦은 농가 피해가 커 지난해와 비교했을 때 70%가량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부터 지난달 20일까지 국내 총 일조시간은 389.9시간으로 집계됐다. 평년(459.2시간)의 84.9%에 불과한 수준이다. 같은 기간 전국 강수량은 238.2㎜로 전국 기상 관측을 시작한 1973년 이후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여기에 이상기후로 노균병과 탄저병, 미국선녀벌레 등 주요 병해충 발생이 빨라지고 있다.

농작물 작황 부진은 곧바로 소비자에 영향을 미쳐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한 달 만에 다시 3%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신선식품이 20% 올라 전체 물가 상승을 견인했는데, 특히 신선과일은 1991년 9월 43.9% 오른 이후 32년5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 폭을 나타냈다.

안동 시민 유모(50)씨는 “어머니 환갑잔치를 위해 청과물시장을 찾았는데 귤 한 상자에 5만5000원, 사과 한 박스가 8만원이나 됐다”며 “바나나와 파인애플 등 저가 과일 위주로 구입할 수밖에 없었다”며 혀를 내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