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의대 증원 2000명 방침에 반발해 전국 주요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들에 대한 행정처분 사흘째인 7일 비상진료체계 강화에 건강보험 재정 1882억원을 추가로 투입하기로 했다. 전날 예비비 1285억원까지 더해 3100억원이 넘는 자금 대부분은 추가 인력 확충보다 병원에 남거나 이미 추가된 기존 인력과 중증환자 치료에 적극 나선 병원에 대한 사후보상 등에 책정됐다.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 숫자가 너무 많은 데다 돌아올 여지가 없고, 당장 추가로 가용할 인력이 없는 상황에서 현재 병원을 지키는 의료진에 대한 보상을 강화하자는 고육지책인 셈이다. 앞서 정부는 “환자를 돌보고 있는 의료진에겐 합당한 ‘보상’을 하고, 환자를 떠난 의사에겐 상응하는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가용 인력에 금전적 지원 강화”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날 오전 11시 기준 서면 점검을 통해 100개 수련병원 전공의(1만2225명) 중 계약을 포기하거나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는 1만1219명(91.8%)으로 집계됐다. 정부는 현장점검을 통해 업무개시명령을 위반하고 미복귀한 전공의들에게 5일부터 매일 수백명씩 행정처분 사전통지서를 등기우편으로 보내고 있다. 정부는 전공의 공백이 큰 데다 돌아올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보는 듯하다.
전공의들 빈자리는 PA(진료보조) 간호사와 공보의, 군의관 등 가용할 수 있는 대체인력을 투입해 메꾸고 있다. 더 이상의 추가 인력 투입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간호사들이 의사 업무 일부를 합법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 보완 지침’을 발표한 데 이어 이날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필수의료 보상강화 추진계획 등을 주로 논의한 배경이다.
정부는 구체적으로 건보 재정 1882억원을 통해 중증환자 진료체계를 유지하고 적극 진료한 기관에 사후보상하고 경증환자 회송에 대한 보상도 높인다. 비상진료 기간 중 상급종합병원 등의 중증환자 중심 진료를 유도하기 위한 조치다.
병원 내 중환자 및 응급상황 발생 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교수 등 전문의가 중환자 진료 시 정책지원금을 제공하고, 일반병동에서도 심정지 등 응급상황 발생 시 조기 개입 및 적시치료를 하는 신속대응팀에 대한 보상강화도 추진된다. 응급환자의 신속한 전원 및 24시간 공백 없는 응급의료체계 유지에 대한 보상 역시 강화한다. 중증환자를 신속하게 배정하면 보상하고, 심폐소생술 등 응급실에서 시행하는 의료행위 등에 대한 가산도 대폭 인상한다. 이번에 수립된 지원 방안은 의료기관 안내를 거쳐 오는 11일부터 시행된다.
전날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예비비 1285억원은 △야간과 휴일 비상 당직 인건비 지원 △공보의, 군의관 파견 지원 △병원 추가 인력 채용 비용 한시적 지원 △병원 간 이송 및 구급차 이용료 지원 등에 즉각 투입된다. 아울러 지방 신생아 중환자실 전담 전문의 진료에 대한 공공정책 수가 신설 등에도 쓰인다. 정부 관계자는 “소아외과 계열은 현재도 수가 가산을 하고 있는데, 앞으로 2배 이상 가산할 계획”이라며 “산모·신생아 관련 지원은 정규 수가가 된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늘어난 간호사 업무에 대해서도 보상 계획을 세우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각 병원에서는 간호사들의 업무가 늘어남에 따라 자체적으로 보상해야 하는데, 전담간호사를 채용하는 데 (정부가) 보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번아웃 호소하는 의료진
정부는 현재까지 의료현장에서 큰 혼란 없이 비상진료체계가 유지되고 있다는 입장이다. 전날 오전 12시 기준 응급실 일반병상 가동률은 29%, 중환자실 병상 가동률은 71% 수준으로 집단행동 이전과 유사한 수준이라고 했다. 아울러 ‘빅5’ 병원의 중환자실은 축소 없이 운영하고 있고, 응급실도 중증환자 위주로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의료 현장을 2주 넘게 지키고 있는 의대 교수들은 ‘번아웃’을 호소하고 있고, 전공의 이탈 후 환자가 줄어든 ‘빅5’ 병원 등은 경영 위기를 걱정하고 있다.
서울대학병원 심장내과 A 교수는 오후 7시가 넘어서도 퇴근 대신 당직을 위해 병원에 남았다. 그는 “2월까지는 전문의가 있었고, 초반이라 피로도가 심하지 않았는데 3월엔 더는 버티기 힘든 상황이 걱정된다”고 했다. ‘빅5’ 병원의 또다른 교수는 “지금 상급종합병원에 근무하는 대부분의 교수가 모두 외래진료, 시술에 당직까지 서고 ‘인턴잡’까지 하면서 ‘번아웃’에 몰렸다”고 말했다. 인턴잡은 심전도 찍기, 병동 동맥혈 검사, 혈액 배양검사 등 평소 인턴들이 주로 하는 업무다.
환자 급감으로 ‘빅5’ 병원들의 손실도 커지고 있다. 이들 병원은 지금까지 80억∼120억원의 손실을 봤다고 한다. 일부 대학병원은 3월에 한해 무급휴가를 도입했고, 이를 고려하는 병원도 늘고 있다. 통상 병상 가동률이 95%에 달했다가 절반에도 못 미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