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에 ‘소방영웅길’ 명예도로가 생겼다. 이 길은 2001년 3월4일 홍제동 화재 참사가 발생한 주택 인근에 있다. 당시 소방관 6명(박동규, 김철홍, 박상옥, 김기석, 장석찬, 박준우)은 시민 7명을 구조한 뒤 잔불 작업을 벌이다 건물 안에 사람이 있다는 말에 다시 건물 안으로 뛰어들었으나 순식간에 건물이 무너지면서 순직했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는 지난 4일 소방영웅길 명예도로명 지정 기념식을 개최했다. 기념식에는 유가족과 동료 소방관 그리고 소방관 출신 더불어민주당 오영환 의원이 함께 했다. 오 의원은 총선을 1년 앞둔 지난해 4월 “국민 곁의 소방관으로 돌아가고자 한다”며 불출마를 선언했다. 오 의원은 실제로 21대 국회의원 임기가 끝나면 다시 소방관이 되기 위해 소방관 시험 준비를 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오 의원은 지난 8일 세계일보 인터뷰에서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저 위험한 곳에 뛰어드는 동료 옆이고, 우리를 간절히 기다리는 위험에 빠진 국민 옆”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그러면서 인터뷰 내내 “소방관 순직 사고의 근원은 인력 부족”이라며 “반드시 증원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곧 임기가 끝난다.
“그래도 아직 기대가 많다. 5월 국회까지 법안 통과는 된다. 내가 당선인 시절, 20대 국회 마지막 회의에서 주요 법안들이 통과되던 기억이 생생하다.”
―국회에서 통과시킨 가장 의미 있는 법안은.
“가장 먼저 통과시킨 건축법 개정안이다. 수천 명 인명 피해가 발생했던 특정 가연성 건축 자재를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법이었다. 20여년 전부터 대형 화재가 발생하면 수없이 원인으로 지목받으면서도 경제적이라는 이유로 통과가 안 됐던 법이다. 이거 하나만 바꿔도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수백 명 인명 피해를 막을 수 있으니 이거 하나만이라도 바꿔 보자 했는데 2년 만에 통과됐다. 또 하나는 공상추정법이다. 현장 소방관이 병에 걸리거나 다쳤을 때 소방관이 직접 입증해야 했던 것을 국가가 먼저 인정해 주는 법이다. 소방관 본인이, 가족들이 그리고 동료들이 싸워야 했던 문제들이다. 이런 법들 모두 제가 잘해서 통과된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희생이나 죽음과 같은 비극이 있은 뒤에 조금씩 발전해 왔던 것들이다. 수많은 동료 소방관이 자기 생명을 던져서 희생하고 헌신해 온 수십 년의 역사, 국민이 이제는 이렇게 두면 안 된다는 시대정신이 있었기에 할 수 있었던 일이다.”
―23년 전 ‘홍제동 참사’ 이후 많이 개선됐다지만 비극적 참사는 여전하다.
“소방관들이 더 위험한 현장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면 최대한의 준비는 갖추게 해 줘야 한다. 소방관을 대체할 기계 로봇과 인공지능(AI)의 등장은 요원한 만큼 결국은 사람이 할 수밖에 없는 일인데 사람이 부족해서 발생하는 상황은 막아야 되지 않겠나. 지난 정부에서 5년간 소방관 2만명을 충원했다지만 여전히 인력이 부족하다. 안전에 대한 시민 욕구가 늘어나면서 소방서와 소방안전센터, 소방차도 그만큼 늘어났다. 필요한 소방 인력도 더 늘어났다. 소방관만큼은 공무원 감축이라는 현재 정부 기조에도 달리 판단하고 배치를 해야 된다고 수없이 얘기를 해 왔지만 아직은 변화가 없다. 예산 독립 그리고 조직의 완전한 독립, 국가직으로 완전한 전환이 소방의 현장 활동에 끼치는 영향도 지대하다. 순직 사고를 줄이는 등 국가가 현장 요구에 부응하는 길이기도 하다.”
―국회의원을 그만두고 다시 소방관의 길을 가려는 이유는.
“현장 동료들은 지금도 위험한 곳에 가고 있다. 그 위험은 소방관의 숙명일 텐데, 그들에게만 숙명을 짊어지게 한 채 나는 여기 있겠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견딜 수 없었다. 건축법을 바꿨지만 법 개정 전 지어진 냉동 물류창고에서 세 분의 소방관이 순직했다. 홍제동 화재 22주기에 ‘소방관들의 희생 뒤에 발전하는 게 아니라 선제적으로 이런 사고를 막을 수 있게 하는 노력을 하겠습니다’라고 약속하자마자 이틀 뒤에 또 사고가 났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저 위험한 곳에 뛰어드는 동료 옆이고, 우리를 간절히 기다리는 위험에 빠진 국민 옆이라는 생각에 불출마를 결심했다.”
―시험 준비는 잘하고 있는가.
“임기가 끝나면 할 생각이다. 제가 사랑해 마지않는 소방 관계 법령들을 공부한다는 생각에 설레기도 한다. 다만 4년 동안 망가진 심신의 상태로(웃음) 체력시험 준비를 해야 되기 때문에. 시간은 좀 걸리겠다.”
―소방관의 아픔을 우리 국민 모두가 보듬어야 하는데.
“예산이나 치유 전담 조직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소방 인력이 급하다. 마음과 정신에 고통받는 시기에는 무엇보다 시간이 필요하다. 쉴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정원 기준도 채우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마음이 아프다, 힘들다는 이유로 동료에게 부담을 지우는 소방관이 몇이나 있겠나. 트라우마 치료를 위한 시설도 경찰은 열 곳이 넘는다는데 소방은 이제 1개를 짓고 있다. 시간도 인력도 장소도 없고, 개인에게 모든 부담을 지우는 것이 현실이다.”
―4년 전 정치에 입문했을 때와 지금 정치 상황을 비교해 본다면.
“정치권은 대화조차 하지 않는 전쟁 국면이 대선 이후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윤석열정부 실정과 무능, 외교에서의 여러 논란과 언론이나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탄압하려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에 국민이 분노했다. 이에 대항해 국민 목소리를 대신해서 내 준다는 효능감을 느끼는 대상에 대해서도 부족하다고 보는 것 같다. 내 삶에 직접 연결된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가치를 지켜 주고, 나를 대변하는 세력이 없다는 목소리가 큰 것 같다. 지난 총선 당시에는 코로나19가 발발했다. 굉장히 막연하고 불안했지만 국가가 나를 지켜 준다는 효능감은 느끼게 해 줬던 시기였다. 지금은 상대 진영에 대한 공격과 비난만 남아 있다. 여기에 사당화 논란이나 의도적으로 보이는 반대파 숙청이라든지. 국민이 실망할 빌미를 끊임없이 제공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대화와 타협을 시도하면서 부딪혔던 벽이 있었을 것 같다.
“결국 정치인이 문제였다. 권력을 잡으려 한 그룹이 원하는 목소리를 강하게 낸다. 대화와 타협도 공격의 빌미가 되기 때문에 그것조차 하지 않는다. 그런 효능을 맛본 정치인들은 팬덤에 올라타 입지를 더 공고히 하고 반대파를 공격한다. 팬덤은 문제가 아니었다. 정치 자체를 발전시키기 위해 나를 지지하고 있는 사람들에게조차 ‘아닌 건 아니다’라고 설득할 수 있는, 특정 팬덤이 아닌 다수를 아우를 수 있는 지도자가 나왔으면 한다.”
―민주당 공천은 어떻게 봤는가.
“참담하다. 시스템이라는 말 자체가 공염불이 될 수 있다는 걸 목도하고 있다. 지난 총선 당시 10년간 복당 불가라는 조건을 걸었는데 탈당해서 무소속으로 출마까지 했던 사람들은 적격 검증을 받아 경선에 도전했다. 반대로 검증 단계부터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하위 평가를 받은 분들 면면을 보면 당내 주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인물이 많았다. 국민 보기에 ‘시스템을 자의적으로 휘두를 수 있구나’하는 의심을 심어 준 것은 아닌가.”
―국회의원 오영환은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가.
“국민 생명과 안전, 소방에 한없이 진심이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국민 안전과 생명이 우선시되는 사회가 되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뭐든지 하겠다. 국민께서도 그렇게 봐 주셨으면 좋겠다.”
◆오영환 국회의원은…
●1988년 경기 동두천 출생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졸업 ●‘어느 소방관의 기도’ 저자 ●중앙119구조본부 근무 ●119특수구조단 산악구조대원 ●수도권119특수구조대 항공구조구급대원 ●21대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경기 의정부시갑)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