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노크 귀순’으로 남한에 내려온 북한이탈주민(탈북민) 이철호(44)씨가 생활고에 시달리다 최근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것으로 파악됐다. 남한에서 제2의 인생을 꿈꾸며 군사분계선을 넘어 내려왔지만,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다 끝내 극단으로 향한 것이다. 이씨처럼 남한에서 적응하지 못한 북한이탈주민은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 5년간 국내에서 숨진 북한이탈주민 8명 중 1명은 극단적 선택으로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13일 경찰 등에 따르면 이씨는 지난 3일 오후 2시14분쯤 지인에게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며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뒤 잠적했다. 지인의 신고로 수색에 나선 경찰은 당일 오후 7시쯤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의 한 아파트에서 이씨를 발견했다. 이씨는 골절상을 입었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의 지인은 취재진에게 “당장 월세 낼 형편도 되지 않았다”고 이씨의 상황을 전했다.
북한 보위사령부 장교 출신인 이씨는 2008년 4월 경기 파주의 군사분계선을 넘어 귀순했다. 우리 측 경계초소문을 두드리고 귀순 의사를 밝히면서 ‘노크 귀순’으로 이름을 알렸다.
북한이탈주민의 적응 실패는 가정 불화로도 번지고 있다. 2017년 탈북한 이순복(55)씨의 아들(21)은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총 5차례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생활고와 가정불화로 인한 우울증이 그 이유였다.
지난 11일 방문한 서울 동작구 소재의 한 임대아파트 순복씨의 집은 휑한 기운이 감돌았다. 15평 남짓한 집에 들어서자 식탁 위로는 약봉지가 잔뜩 쌓여 있었다. 지체장애 2급 판정을 받은 순복씨가 끼니마다 챙겨 먹어야 하는 약들이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된 순복씨는 아들의 몫까지 매달 100여만원의 수급비를 받는다. 그러나 병원비로 지출하는 금액만 월 100만원을 웃돌아 극심한 생활고를 겪고 있었다. 순복씨와 아들의 끼니는 사실상 탈북자단체의 지원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이마저도 떨어지면 순복씨와 아들은 굶는다고 한다.
순복씨의 가족이 탈북을 결심했던 2017년 순복씨 아들의 나이는 14살이었다. 지난해 스무살이었던 그는 한강에서 세차례 뛰어내리기를 시도했다. 순복씨는 “지난 1월 집에 들어왔을 때 아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려는 것을 발견했다”며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을 껴안고 울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이혼 소송 중인 남편이 집을 나가기 전 아이를 자주 때렸다”며 “북한에서 온 나는 법도 모르고 신고도 어떻게 하는지 모르니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