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장관님 야당이어도 사진 찍어 주시나요?”

22대 총선에서 수도권에 출마한 한 더불어민주당의 예비후보는 울분을 토한다. 지역구에 나온 여당 출신 예비후보가 지역민원 해결이 가능한 주무부처 장관과의 사진을 연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려서다. 여당 예비후보들이 주요 부처 장관들과 찍은 사진을 올리는 것은 명백한 정치적 중립 위반이라는 게 그의 이야기다.

 

최근 여당 예비후보들은 유권자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한 방편으로 SNS에 정치권 실세나 주무부처 장관들과의 친분을 과시하는 사진을 찍어 올린다. 하지만 이들과 유력 장관들이 함께한 사진을 지켜보는 시선은 여당 내부에서조차 달갑지 않다. 경선에서 한 식구끼리 얼굴을 붉힌 국민의힘 예비후보들 사이에서도 ‘대통령실 출신 인사들의 카르텔’이라는 비판이, 공무원 사회에선 ‘장관이 총선 모델이냐’는 비아냥까지 들린다. 최근 만난 어느 부처의 정책보좌관은 “(여당의 한 예비후보는) 무언가를 받으러 온 사람처럼 당당하게 ‘장관님 좀 보러 왔어요’하고 들어왔다”며 “다른 직원들 보기 민망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조지연 선거사무소에서 제작한 카드뉴스.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자. 경북 경산에 출마해 국민의힘의 공천권을 따낸 조지연 후보는 지난 1월16일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난 11일에는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잇달아 만났다. 그는 장관들과 함께 집무실에서 찍은 사진을 자신의 SNS에 올리며 지역 현안에 대해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했다고 한다. 실제 조 후보가 이번 총선에서 내건 국비 확보와 지하철 건설, 대형 아울렛 유치 등에 공약의 주무부처 장관이 바로 이 세 명의 장관이다.

 

조 후보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박 장관은 지난달 15일 김성용 송파병 예비후보를 비롯해 이민찬 춘천철원화천양구을 예비후보, 김현준 수원시 갑구 예비후보 등 국민의힘 소속 예비후보들을 만났다. 안 장관도 조 후보뿐만 아니라 최근 배준영 인천 중구·강화군·옹진군 예비후보를 만나 지역구 현안에 대한 건의문을 전달받고 기념촬영을 했다. 여당 예비후보들이 만난 각 부처 차관들까지 내려가면 그 수는 걷잡을 수 없이 많아진다.

 

물론 각 부처 수장들이 단순히 후보들의 의견을 듣는 정도만으로 정치적 중립 의무를 어겼다고 볼 수는 없다. 문제는 이들이 장관들과의 친분을 이용해 면담하고 자신의 선거운동에 활용하고 있다는 데 있다. 실제 각 장관을 만난 예비후보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자신의 SNS도 모자라 지역 언론사에 직접 만든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특히 조 후보가 최 장관을 만난 날은 공교롭게도 방기선 국무조정실장이 정부서울청사에서 48개 중앙행정기관 감사관들을 만난 날이다. 이날 방 실장은 “불법 선거 개입 사례는 단 한 건이라도 발생해서는 안 된다”며 일선 공직자들에 대한 정치적 중립 의무를 점검해 달라고 요청했다.

 

여당 예비후보들과 연일 사진을 찍고 있는 장관들이 과연 소속 기관 공무원들에게 선거의 정치적 중립성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하는 시기에 특정 예비후보의 선거운동 도구로 전락한 장관들에게 묻고 싶다.

 

“장관님 야당 후보였어도, 함께 사진 찍으셨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