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엔 귀천이 없다’는 말은 한국 사회에선 잘 통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인은 ‘직업에 지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타 국가에 비해 유난히 강하고, 사회적 지위에 대한 기준도 달랐다. 특히 사회적 지위가 가장 높은 직업으로 국회의원을 꼽았고, 미국·독일인이 1위로 꼽은 소방관에 대해선 사회적 지위가 하위권인 것으로 평가했다.
17일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의 ‘직업의식 및 직업윤리의 국제비교연구’에 따르면 지난해 7∼8월 18∼64세 취업자 1500명에게 15개 직업이 갖는 사회적 지위를 조사한 결과 국회의원(4.16점)이 1위로 꼽혔다. 연구진은 생산직·서비스직·사무관리직·전문직 등 직종별 대표직업 15개의 사회적 지위를 5점 척도(매우 낮다 1점∼매우 높다 5점)로 조사했다.
조사 결과 국회의원에 이어 △약사(3.83점) △인공지능전문가(3.67점) △소프트웨어개발자(3.58점) 순으로 상위권을 차지했고, 중·고교 교사(7위), 은행 사무직원(8위), 중소기업 간부(10위) 등 전통적인 중산층 직업군이 중위권이었다. 하위 5개 직업으로는 △소방관(3.08점) △사회복지사(2.54점) △공장근로자(2.19점) △음식점종업원(2.02점) △건설일용근로자(1.86점)가 꼽혔다.
소방관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직업임에도 국내에선 열악한 처우에 시달리고 있고 사회적으로 존중하는 인식도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매년 연구원과 교육부가 진행하는 학생 희망직업 조사에서도 소방관은 초·중·고교생이 선호하는 직업 20위 안에 들지 않았다.
3년 차 소방 공무원 A씨는 “처음에 소방관을 준비한다고 했을 때 가족들이 위험하고 고생한다며 모두 말렸다. 결혼하기 어려울 것이란 이야기도 들은 적 있다”며 “선택을 후회하지 않지만 예산이나 인력 상황이 열악한 것을 볼 때면 나라에서 알아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1위와 15위의 점수 격차도 다른 국가보다 유달리 컸다.
국회의원이 받은 점수(4.16점)는 15위인 건설 일용근로자(1.86점)보다 2.3점이나 높다. 반면 다른 국가의 경우 1위와 15위 차이는 △중국 1.68점 △독일 1.07점 △일본 0.93점 △미국 0.92점으로 한국보다 훨씬 작았다. 다른 국가와 달리 한국은 직업별로 느끼는 사회적 지위 편차가 큰 것이다.
한국 외 4개국은 15위가 받은 점수도 2.54점(중국)∼3.01점(미국) 사이였으나 한국에선 12위부터 2.54점 밑으로 내려갔다. 보고서는 “직업 위세 격차가 한국은 두드러지게 큰 것으로 나타났다”며 “한국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직업 귀천 의식이 강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해석했다.
이밖에 ‘자신의 직업’의 사회적 지위는 미국이 평균 3.37점으로 가장 높았고, 독일 3.31점, 중국 3.08점, 한국 2.79점, 일본 2.68점 순이었다. 연구진은 “한국과 일본 취업자들의 낮은 직업 자존감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