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에 국내 먹거리 한계… “아세안 5國서 돌파구 찾아야” [심층기획-新성장동력 찾는 보험업계]

국내 성장률 한자릿수… 출혈경쟁 심화
글로벌 보험사는 해외 비중 평균 67%

동남아 성장세 주도하는 아세안 5개국
“중산층 증가·기반시설 확충 등 수요 커”

정부, 외국 자회사 설립 간소화 나서
생보협 “해외진출 규제 개선안 건의”
“CEO가 중장기 비전 세울 여건도 중요”
우리나라가 저성장 및 인구구조 변화 국면에 접어들면서 보험업계도 성장 동력 약화에 직면했다. 고성장 시기에는 중산층의 증가로 보험 가입자가 빠르게 늘었지만, 이제는 과거와 같은 가파른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국내 보험산업이 성숙기에 진입하면서 대한민국이라는 우물 속 보험사 간 출혈 경쟁 위험도 갈수록 심화하는 모양새다. 정체된 국내 보험업계의 신(新)성장 동력으로 ‘해외 진출’이 강조되는 이유다. 해외 진출은 세계 유수 보험사들의 성장 전략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전문가들은 국내 대형사·중소형사 할 것 없이 해외 진출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보험업권의 활로 개척을 위한 당국의 적극적인 규제 개선과 더불어 단기 성과보다는 중장기적 비전 아래 해외사업 전략을 추진해 나가는 각 보험사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해외 진출로 활로 찾은 글로벌 보험사들

19일 보험연구원 등에 따르면 생명보험사, 손해보험사 모두 국내에서의 성장성은 크게 떨어진 상태다. 생보와 손보의 연평균(CAGR) 수입보험료 성장률은 1990년대에 각각 12.6%, 16.7%였으나 2010년대에는 각각 3.9%, 6.9%로 하락했다. 연평균 총자산 성장률도 1990년대 생보와 손보가 각각 15.1%, 20.8%였지만 2010년대에는 각각 9.2%, 13.6%로 낮아졌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보험료나 국민 1인당 보험료도 선진시장 수준까지 올라왔다. 2021년 기준 우리나라 GDP 대비 보험료는 10.9%로 선진시장(9.7%)이나 전 세계(6.8%) 평균에 비해 높다. 1인당 보험료는 3735달러로 선진시장(5073달러)보다는 낮지만, 신흥시장(191달러)이나 전 세계(853달러) 평균은 크게 웃돌고 있다.

국내 성장세 저하에 대형 보험사 위주로 해외 진출이 진행되고 있으나 아직 성과는 미미하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독일·프랑스·일본의 글로벌 보험사(알리안츠·AXA·도쿄해상)들은 총당기순이익에서 해외사업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평균 66.8%(2022년 말 기준)에 달하지만 국내 생보사는 1.5%, 손보사는 0.5% 정도에 불과하다.

 

국내 보험산업 정체에 해외로 눈을 돌려 활로를 모색한 대표적인 사례는 일본이다. 우리보다 앞서 저성장 및 인구구조 변화를 겪은 일본 보험사들은 해외시장 진출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자산 및 이익 성장을 이뤄냈다.

강윤지 보험연구원 연구원은 지난 1월 발표한 ‘일본, 대형 손해보험회사의 해외사업 부문 이익 확대’ 보고서에서 “일본 대형 손보사 3사(도쿄해상·MS&AD·솜포재팬)의 전체 이익 중 해외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며 “도쿄해상과 솜포재팬의 경우 지난해 상반기 전체 이익 중 60% 이상이 해외사업에서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우리나라 금융당국도 새로운 성장 모멘텀 확보 방안으로 해외 진출을 강조하며 보험사의 해외 자회사 소유 관련 절차를 간소화하는 등 제도 개선을 진행 중이다.

생명보험협회는 이날 ‘2024년 생보산업 성장전략’ 계획을 발표하면서 “국내 생명보험시장 포화와 인구구조 변화 등에 따른 성장 정체 극복과 신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생보사의 해외진출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동남아시아 등 성장 잠재력이 큰 국가들을 중심으로 금융당국 등과의 네트워크를 확충하고 꼭 필요한 규제개선 사항을 발굴·건의하겠다”고 밝혔다.

 

◆떠오르는 ‘아세안 5’ 보험시장

중산층 인구가 빠르게 늘고 있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은 국내 보험사가 진출할 만한 시장으로 꼽힌다. 특히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성장성이 두드러진 아세안 5개국(아세안 5)이 매력적인 시장으로 평가받는다. 보험연구원이 지난해 발간한 ‘동남아시아 보험시장 평가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 5개국의 인구와 GDP는 아세안 전체의 각각 87.3%, 83.4%를 차지할 정도로 동남아시아 지역 성장세를 주도하고 있다.

보고서는 “아세안 5에서는 새롭게 등장한 중산층의 사망 및 건강보장 수요가 증가하고 도시 기반시설이 개선됨에 따라 자동차, 배상책임 등 손해보험 수요도 증가할 것”이라며 “아세안 5는 대체로 젊은 인구구조를 보이지만 향후 고령화 진행을 염두에 두고 연금과 건강은 물론 요양·간병 서비스를 포함한 시장 진출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승준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전반적으로 국내 보험시장에서 성장 동력이 약화했다”며 “지금까지는 큰 보험사만 해외 진출을 해왔는데, 이제는 대형사나 중소형사 모두 더 이상 국내에서 성장 여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인 만큼 (대형사, 중소형사) 둘 다 해외로 진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험사의 해외 진출이 실질적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비전 수립과 이를 안정적으로 뒷받침할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외 진출은 단기간 내 성과를 내기 힘든데, 통상 2∼4년에 불과한 국내 보험사 최고경영자(CEO) 재임 기간을 고려하면 중장기적 해외 진출 전략 추진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석호 한국금융연구원 보험·연금연구실장은 “단순히 연임이 되고 (임기가) 길게 간다고만 해서 되는 건 아니고, CEO의 판단력과 지식, (대주주 등을) 설득할 능력, 혜안 등이 맞물려야 하는 것”이라며 “(CEO 성과 보상 체계도) 아직 단기 성과 위주이기 때문에 중장기 성과를 낼 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