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문재인정부에서 도입한 ‘공시가격 현실화’ 폐지를 공식화했다. 올해부터 추진해 2025년 공시부터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박근혜정부가 도입했던 ‘뉴스테이’와 유사한 ‘기업형 장기임대주택’도 추진한다. 중산층·서민 세금 부담 경감과 주거 안정성을 강화하려는 의도라지만 일각에서는 ‘부자 감세’, ‘대기업 특혜’, ‘선거용 정책’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국토교통부는 19일 서울시에서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열린 ‘시민과 함께 만드는 새로운 한강의 기적’ 민생토론회에서 도시 공간·거주·품격 3대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공시가격 현실화 폐지… 내년 적용
국토부는 2021년부터 적용 중인 ‘공시가격 현실화’(시세의 90%까지) 계획을 폐지하고 이를 2025년 공시부터 적용한다고 밝혔다. 부동산 공시가격 안정성을 회복하고 국민 불편을 해소한다는 취지다.
국토부에 따르면 공시가격 현실화가 도입된 이후 통상 연평균 3% 수준으로 오르던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연평균 18% 상승했다. 특히 집값 급등기에 시세반영률을 급격히 높임에 따라 공시가격이 단기간에 급등하고, 국민의 보유세 부담이 가중됐다는 것이 국토부의 입장이다. 실제로 공시가격은 각종 세금과 복지 제도의 지표가 되는 가격으로, 세금뿐 아니라 건강보험료 피부양자 자격, 기초연금 대상 자격 등에 영향을 미친다.
국토부는 “재산세, 건강보험료 등 조세·부담금에 따른 국민의 경제적인 부담이 대폭 경감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공시가격 현실화 폐지 효과에 대한 기대를 내비쳤다.
하지만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폐지의 주된 수혜자는 고가 주택 소유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공시가율이 일률적으로 적용될 경우 주택 가격이 높을수록 세 부담 경감이 더 크기 때문이다. 더욱이 감세로 인한 국가 재정 악화 문제도 뒤따른다.
권대중 서강대 교수(부동산학)는 “공시가격 설정은 복지국가 재원 마련과 더불어 부의 양극화 완화의 목적이 있다”며 “공시가격 현실화 폐지가 침체된 부동산 시장 활성화 및 적절한 공시가격 재설정을 위한 임시적인 조치여야지, 영구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시가격이 떨어지면 서민보다 부자가 더 이득이다. 선거용으로 정교하게 정리되지 않은 대책을 내놓은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권 교수는 이어 “궁극적으로는 ‘공시가격 차등 현실화’가 바람직하다”며 “서울 80%, 지방 대도시 70%, 농지 60% 이런 식으로 차등 적용해야 농지나 임야를 가진 사람들의 피해를 줄이면서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로부터 적정 수준의 세금도 걷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올해부터 내년까지 2년간 비아파트 10만호를 매입해 중산층·서민층에게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우선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주택도시보증공사(HUG)를 통해 든든전세주택 2만5000호를 신규 도입한다. 60∼85㎡ 규모의 신축·기축 빌라 등을 매입한 후 무주택 중산층 가구에 주변 시세 대비 90% 수준 공급하고 최대 8년간 이용할 수 있게 한다. 신축 매입임대 주택 공급도 당초 6만호에서 7만5000호로 1만5000호 확대한다.
이외에도 청년·취약계층 주거비 경감을 위해 청년월세 지원사업을 확대하고, 전세반환보증 가입자 보증료 지원, 신생아 특례 대출 지원, 주거급여 지원을 강화한다.
◆“기업 장기임대주택, ‘뉴스테이’ 재탕”
국토부는 리츠 방식의 기업형 장기임대주택 도입도 추진한다. 리츠는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아 오피스 빌딩이나 물류센터, 호텔 등 부동산에 투자한 뒤 임대, 재매각 등으로 발생하는 이익을 배당하는 상품이다. 개인 간 거래 중심인 전월세 시장의 패러다임 전환에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려는 취지다. 기업이 참여할 경우 ‘전세사기’, ‘역전세’에 따른 전세시장 불안을 완화하고 임대 시장을 선진화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국토부는 기업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방편으로 5% 상한 외 임대료 증액 제한을 완화하고 임대기간 중 임차인 변경 시 시세 반영을 허용하는 등 적정 임대료 수익 확보를 위한 환경도 조성해 준다는 계획이다. 더불어 20년 이상 장기에 안정적으로 임대사업을 유지할 수 있도록 기금 융자 및 세제 혜택도 지원한다.
반면에 기업형 장기임대주택 도입은 임대료 상승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 단가를 높일 경우 주변 시세를 견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정부 ‘뉴스테이’의 재탕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문도 서울디지털대 교수(부동산학)는 “결국은 박근혜정부 때 기업 특혜를 주던 뉴스테이로 가는 수순의 ‘연막작전’ 같다”며 “원래 아파트를 지으면 기업 돈이 들어가야 하는 건데 기금으로 지원하고, 세제 혜택 주고 임대료도 받아서 기업 배만 불릴 것이며, 무엇보다도 재원은 어디서 가져올 것이냐”며 혹평했다.
국토부는 노후 저층 주거지를 개선하는 ‘뉴:빌리지’ 사업도 추진한다. 구체적으로 소규모주택정비 관리지역에 속한 주민들이 스스로 개량·건축에 나설 경우 이에 대한 비용을 기금 융자로 지원한다. 아울러 국비 150억원가량을 들여 주변 기반시설 및 편의시설을 설치하고 추가적으로 용적률을 법적 상한의 1.2배로 완화해 준다.
도심 내 낙후된 공간을 문화예술의 공간으로 재구성하는 사업도 추진한다. 서울 내에는 마포·홍대 복합예술벨트(청년예술 중심지), 서울역·명동·남산 공연예술벨트(공연예술 중심지) 두 곳이 포함된다. 권역별로는 경기·강원권(개방형 수장시설), 충청권(문화기술 특화시설), 경상권(장르특화 공연시설), 전라권(전통문화시설)에 문화예술 거점 인프라를 조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