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전남 신안군 안좌면 자라도 자라1구 경로당에서 만난 80대 주민 문동영 할아버지는 4년여 만에 다시 섬을 찾아온 병원선이 무척 반갑다고 했다. 자라도는 인근 안좌도와 연도교(連島橋)로 이어졌지만 보건소나 병의원이 하나도 없는 대표적 의료 취약지다. 신안군, 안좌면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22년 기준 신안군 전체 의료기관은 병원급 4곳, 의원급 11곳, 치과병원 4곳, 한의원 6곳으로 종합병원급은 한 곳도 없다. 안좌면 등록 의료기관은 의원급 1곳, 한의원 1곳이 전부다. 응급·중증환자가 발생하면 자동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목포시까지 나가야 하는 실정이다.
자라도와 같은 무의도서(의사가 없는 섬)는 전남 지역에만 6개 시·군 90곳에 달한다. 그나마 이들 의료취약지 공백을 메우는 게 병원선이다. 전남도가 운용하는 170t 규모의 병원선 전남512호는 올해로 20년째 의사가 없는 작은 섬들을 돌며 주민들을 무료로 진료하고 있다. 내과와 치과, 한의과 전공 공중보건의 3명과 간호사 3명, 의료기사 2명 등 총 15명이 근무하고 있다. 전남512호는 이날 오전 9시 목포시 남항을 출발해 1시간30분가량 운항 끝에 자라도에 도착했다. 병원선은 예년 같으면 1년에 4회 정도 자라도를 들렀지만 이번에는 코로나19 대유행에 따른 집합금지명령 등의 이유로 2019년 4분기 이후 4년여 만에 찾은 것이다.
자라도 선착장에 서서 수심이 얕아 접안하지 못하고 주민 수송용 보트로 갈아타는 전남512호 의료진 모습을 지켜보던 한 주민은 “아파도 병원에 가질 못했는데 때마침 병원선이 와 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이동진료소는 자라1구 경로당. 아침 일찍부터 경로당에 모여 있던 자라도 주민 30여명이 의료진을 반겼다. 책상 대용의 밥상 3개 앞에 세 명의 공보의가 자리를 잡자 주민들이 한 줄로 앉아 진료 순번을 기다렸다.
환자 접수와 동시에 당뇨 체크가 이뤄지더니 옆줄 내과에서는 혈압을 잰 뒤 진료 상담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공보의 옆 간호사는 미리 준비해 온 한방용 파스와 감기약, 관절염 위주의 기본 상비약을 흰색 비닐봉투에 담아 어르신 손에 들려 줬다. 처방약을 건네받은 한 주민이 “허리, 다리가 너무 아파 걸어 다니는 것도 힘들다”고 토로하자 한의학 전공 공보의가 경로당 한편에서 침을 놓아 줬다. 또 다른 쪽에서는 의료기사가 병원선에서 가져온 휴대용 엑스레이 장비로 주민이 아프다고 한 부위 영상을 찍고 있다.
전남512호 의료진은 치매·정신건강 상담도 진행했다. 5∼6명의 전문 인력이 주민들과 일대일 상담을 통해 치매 초기 검진 및 예방을 위한 인지장애·우울증, 스트레스 검사 등을 진행했다. 문동영 할아버지는 “관절이 계속 안 좋아져 힘들었는데 오늘 진료도 받고 약까지 받아 가니 더할 나위 없이 기분이 좋다”며 “선생님들이 내 생명의 은인”이라고 의료진 손을 맞잡는다.
병원선에 11개월째 상주하고 있다는 구영진 공보의(치과)는 “보건소나 보건지소가 없는 무의도서 지역의 경우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열악한 의료 현실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어 안타깝다”며 “지역 어르신들이 항상 따뜻하게 대해 줘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전남512호 최승용 선장은 “해상에 주의보가 떨어지지 않은 이상 연간 180∼190일 운항하고 있다”며 “궂은 날씨와 빠듯한 일정에도 병원선을 반겨 주는 무의도서 주민들 때문에 힘이 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의료취약지 진료를 1년 차 의사들이 맡고 있는 데 대한 개선 목소리가 나온다. 이상심 전남도 보건복지국장은 “매년 공보의가 줄어들고 있어 보건지소와 섬 지역 1차의료 접근성이 더 어려워지고 있는 실정”이라며 “농어촌 1차의료에 꼭 필요한 공보의가 안정적으로 배치될 수 있도록 병역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