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과 윤석열정부는 운명 공동체입니다.”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달았던 당정 갈등은 가까스로 봉합됐지만 당의 내홍 불씨는 여전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20일 갈등 봉합을 선언했지만 역설적으로 비례대표를 둘러싼 당내 파열음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결국 비례대표 명단은 호남 출신인 조배숙 전 의원이 당선권에 재배치되는 등 후보등록 하루를 앞두고 재의결됐다.
◆당정 갈등 우선 수습 모드로
한 위원장은 이날 경기 안양에서 열린 현장 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서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차이를 언급하며 “황상무 수석이 오늘 사퇴했고, 이종섭 주호주대사가 곧 귀국한다”며 4·10 총선을 앞두고 민심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여당의 책임 있는 모습을 강조하는 데 주력했다. 지난 17일 한 위원장이 황 전 수석의 자진 사퇴와 이 대사의 조기 귀국을 공개 촉구한 지 사흘 만에 사태가 수습 국면에 접어든 것이다.
한 위원장은 이 대사의 사퇴까지 필요한지를 묻는 말에 “저희는 민심에 순응하려고 노력하는 정당”이라며 “이런 상황들이 (민주당과의 차이를) 명확하게 보여 주는 것”이라고 답했다. 한 위원장의 발언에 힘을 실었던 안철수·나경원 공동선대위원장도 환영 입장을 나타냈다. 서울 동작갑에 출마한 장진영 예비후보도 BBS라디오에 나와 “황 수석과 이 대사, 체감적으로 이 대사가 더 국민에게 관심이 큰 것 같다”며 “그 부분이 빨리 해결돼야 수도권 총선에서 반전의 기회를 만들 수 있다”고 추가적인 조치를 촉구했다. 수도권에 출마한 한 후보는 “이 대사의 발령을 취소하거나 본인이 사퇴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번 조치 배경에는 대통령실의 ‘공멸 위기감’이 작용했다. 이 대사 임명과 부임에 법적·절차상 문제가 없다고 여전히 보고 있지만 논리적으로 대응하기에 ‘총선 코앞’이라는 시점이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 내부에선 한참 전부터 “두 사안의 실체를 떠나 국민 여론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이 팽배했으나 윤석열 대통령의 ‘원칙 대응’ 의지가 강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여론 동향과 참모들의 건의를 고려해 이날 한 발 물러서는 결정을 내렸다.
◆비례 명부로 맞붙은 친한·친윤
국민의미래 비례대표 문제는 친윤(친윤석열)계 핵심 이철규 의원이 다시 문제 제기에 나서면서 향배를 가늠하기 어려워졌다.
이 의원은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인재영입위원장 자격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당규에 근거해 당을 위해 헌신한 분들, 특히 호남 지역 인사, 노동계, 장애인, 종교계 등에 대한 배려 의견을 개진했다”며 “권한 없이 청탁한 게 아니라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책무”라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주기환 전 광주시당위원장, 김예령 대변인, 이익선 전 기상캐스터, 영입 인재 개그맨 김영민씨 등을 비례대표 후보로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원은 40여분간 이어진 회견에서 “비례대표 공천은 그 진행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았다”고 소리 높였다. 이어 “저는 인재영입위원장으로서 비례 공천 과정에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며 “어떤 분들은 (저에게) 월권 아니냐 하는데, 그렇다면 한 위원장, 장동혁 사무총장도 다 월권이고 잘못된 것”이라고 지도부를 직격했다. 이날 기자회견 과정에서 이 의원의 회견 공지를 당에서 취소하는 등 신경전도 벌어졌다. 이 의원은 자신이 특정 인물을 추천했다는 보도에 대해 성토하기도 했다. 그는 “당연히 건의하고 요청한 사항을 사천(私薦) 요구라고 했다.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니 제가 몽니를 부린다는 식으로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이날 회견에 용산의 의중이 담겼냐는 질문에 “개인의 인격 문제”라며 선을 그었다.
공관위원인 이종성 의원도 기자들과 만나 “(비례) 1번부터 20번까지 당선권이라고 보면 20번까지 봤을 때 정말 당이나 정부를 위해 당적을 갖고 활동한 기간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며 “반면 당을 위해 고생한 분들은 포함되지 못했다는 평가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1월 당정 갈등 당시처럼 친윤계의 조직적인 반발은 없었지만 물밑에선 익명으로 언론 인터뷰에 나와 ‘윤 대통령의 의중이 담겨있다’는 취지로 지원 사격을 했다. 일각에선 황 전 수석 사퇴와 이 대사 귀국으로 정치적 양보를 한 용산이 비례대표 문제에선 한 위원장에게 양보를 요구한 것으로 해석한다.
장 사무총장은 회견 이후 입장문을 내고 “총선을 앞둔 중요한 시기에 당의 화합을 저해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는 점을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며 “당내 잡음으로 인해 공천 결과 자체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그로 인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원과 국민께서 전혀 바라는 일이 아니기에 총선 승리를 위해 일일이 반박 입장을 내지 않겠다”고 했다.
◆비례명단에 호남·당직자 전진배치
국민의미래 공관위는 이날 오후 장시간 회의 끝에 오후 10시쯤 일부 인원과 순번이 바뀐 비례대표 명단을 재의결했다. 재의결된 국민의미래 비례대표 후보자 명단에 따르면 13번 강세원 전 대통령실 법률비서관실 행정관 자리에 호남 출신의 국민의힘 조배숙 전북도당위원장이 포함됐고, 접대 골프 논란으로 공천 취소된 17번 이시우 전 총리실 서기관 자리에 이달희 전 경상북도 경제부지사가 배치됐다.
또 21번 정혜림 전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원 자리에는 비례순번 13번에 있던 강 전 행정관이 이동 배치됐다. 이철규 의원이 지적했던 비대위원 김예지 의원(15번)과 한지아 비대위원(11번)은 기존 순번을 유지했다. 또 전과와 무면접 전형 등으로 논란이된 김위상 한국노총 대구지역본부 의장도 당선권인 10번에서 변동이 없었다. 또 당초 당직자 몫으로 각각 29번과 26번에 배치됐던 임보라 국민의힘 당무감사실장과 서보성 대구시당 사무처장은 각각 23번과 24번으로 전진배치됐다. 대신 국민의힘 보좌진협의회 회장인 김민정 보좌관은 25번에서 27번으로 순번이 밀렸다.
이와 관련해 공관위는 “신청 철회 의사를 밝힌 후보자를 명단에서 제외하고 호남 및 당직자를 배려했으며 직역별 대표성과 전문성을 고려해 일부 순위를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은 총선까지 ‘원팀’ 기조를 이어 갈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간 쌓인 갈등의 골이 만만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권 내부의 이러한 갈등은 총선 이후 비대위 체제가 종료되고 새 당대표를 뽑는 전당대회 국면에서 본격 표출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