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테랑 조카' 프레데릭 미테랑 前 프랑스 문화장관 별세

사회당인 삼촌과는 사이 안 좋아
우파 사르코지 대통령 시절 입각
배우 윤정희에 佛 문화훈장 수여

프랑수아 미테랑(1916∼1996) 전 프랑스 대통령의 조카이자 프랑스 문화부 장관을 지낸 프레데릭 미테랑이 7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고인은 우리 영화배우 윤정희에게 문화예술공로훈장을 수여하는 등 한국과 인연이 깊다.

 

22일(현지시간) 프랑스 국제라디오방송(RFI)에 따르면 프레데릭 미레랑은 암 투병 끝에 21일 파리에서 타계했다. 생전에 고인과 가까웠던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2007∼2012년 재임)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글에서 고인을 “매우 교양 있고 사랑스러우며 뭐라고 정의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부르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 이어 “열정과 재능을 다 바쳐 문화부 장관직을 수행했다”며 “문화와 예술에 대한 고인의 사랑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기렸다.

프레데릭 미테랑(1947∼2024) 전 프랑스 문화부 장관.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의 조카다. AFP연합뉴스

고인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7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파리 제10대학교에서 정치학을 공부했으나 전공보다는 예술, 특히 영화에 관심이 많았다. 부유한 가정 출신인 고인은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극장을 인수했다. 1986년 재정난으로 문을 닫을 때까지 이 극장을 통해 예술영화들을 상영했다. 1981년에는 영화감독으로 데뷔했으며 뮤지컬 제작에도 손을 댔다. 나중에는 텔레비전 방송에 진출해 영화를 주제로 한 토크쇼나 오락 프로그램 진행자로 명성을 날렸다.

 

무려 14년이나 집권해 프랑스 역사상 최장수 대통령 기록을 세운 삼촌과는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 이는 미테랑 전 대통령이 사회당 소속으로 좌파 성향인 반면 고인은 정치적으로 우파를 지향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우파 사르코지 정부 시절에야 정계에 진출해 2009년 사르코지 대통령에 의해 문화부 장관으로 발탁됐다. 2012년 5월 대선에서 사회당 후보 프랑수아 올랑드한테 져 연임에 실패한 사르코지 대통령이 물러날 때까지 프랑스 문화정책을 책임졌다.

 

고인은 문화장관 시절 과거 제국주의 시대에 프랑스가 이집트, 뉴질랜드 등에서 약탈한 문화유산을 반환토록 하는 등 전향적 정책을 펼친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인들에겐 2011년 배우 윤정희한테 문화예술공로훈장을 수여한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이 훈장은 여러 개의 등급이 있는데 애초 윤정희는 ‘슈발리에’(Chevalier) 등급 훈장을 받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창동이 감독을 맡고 윤정희가 주연배우로 출연한 영화 ‘시’(詩)를 높이 평가한 고인이 직접 슈발리에보다 훈격이 높은 ‘오피시에’(Officier)로 격상시켰다. ‘시’는 2010년 프랑스에서 개봉했으며 그해 프랑스 칸영화제 각본상을 받았다.

2011년 당시 프레데릭 미테랑 프랑스 문화부 장관(가운데)이 영화 ‘시’의 주연배우 윤정희(오른쪽)에게 문화예술공로훈장을 수여한 뒤 윤정희의 남편인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윤정희의 남편이자 재불 피아니스트인 백건우도 2001년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슈발리에를 수상한 바 있다. 윤정희는 2023년 7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한편 고인은 문화부 장관이 되기 전에 쓴 자전적 소설 때문에 곤욕을 치른 적도 있다. 2005년 펴낸 ‘불량 인생’이란 소설을 통해 과거 미성년자와 성매매를 한 적이 있음을 암시했는데, 그가 장관에 오르자 야당과 시민단체 등이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자진 사퇴를 종용하는 여론의 확산에도 고인은 “소설을 놓고 웬 호들갑이냐”며 버텼다. 당시 사르코지 대통령도 고인을 적극 옹호했다. 고인은 미성년자 성폭행 혐의를 받는 영화감독 로만 폴란스키 지지 의사를 굽히지 않은 점 때문에 비난을 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