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밤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가 피로 붉게 물들었다. 22일(현지시간) 모스크바 도심 외곽의 대형 공연장에서 무장 괴한들이 무차별 총격을 가하고 불을 질렀다. 어린이 3명을 포함해 최소 143명이 숨지고 100여명이 다쳤다. 부상자 중 생명이 위태로운 사람이 있다고 하니 희생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무고한 민간인을 살상하는 야만적 테러는 용납할 수 없는 반문명적·반인륜적 범죄가 아닐 수 없다.
러시아 당국은 사건 하루 만에 핵심 용의자 4명을 포함해 관련자 11명을 붙잡았다. 한 용의자는 누군가의 사주로 범행을 저질렀으며 대가로 1800만원을 받기로 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는 즉각 테러를 감행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공개하며 테러 배후를 자처했다. 전문가들은 이 주장에 신빙성이 있다고 했고 미국 정보 당국도 IS 소행이라고 확인했다. 이런데도 러시아 당국은 테러 배후로 우크라이나를 지목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번 테러로 우크라이나에 보복성 공격을 가하고 확전의 빌미로 악용하려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IS는 외국인 인질 참수, 대량 학살, 성폭행과 아동 학대에 이르기까지 세계를 경악게 하는 패륜적 범죄로 악명이 높다. 이들은 2015년 11월 파리에서 무차별 총격을 가해 130여명의 시민을 살해했고 이후에도 프랑스, 튀르키예, 독일, 영국, 스페인, 벨기에, 인도, 방글라데시 등 세계 곳곳에서 끔찍한 테러를 자행해 왔다. 이제 군사적 수단만으로는 테러를 막을 수 없고 특정 국가 힘으로만 대처할 수도 없다. 국제사회가 인류를 위협하는 테러 집단에 맞서 단호히 대응하고 연대와 공조도 한층 강화해야 할 것이다. 잔혹한 범죄로는 원하는 것을 결코 얻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 줘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증오가 증오를 낳는 악순환을 끊어내고 지구촌 평화를 위해 국제사회가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한국도 테러 안전지대일 수 없다. IS는 8년 전 우리 국민과 국내 미군 시설을 테러 대상으로 지목했고 무장 조직원들이 국내에 잠입했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북한이 국제 테러 조직을 가장해 주요 시설 등을 공격할 가능성도 있다. 비상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정부는 공항·항만의 출입국 관리와 보안 검색을 철저히 하고 다중이용시설의 안전 점검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군경의 대비 상태를 재점검하고 해외 기관과 정보 협력도 강화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