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교수협·병원 입장 다르고 전공의들 “중재 요청한 적 없다” 대표성 있는 대화 창구 급선무
정부와 의료계의 협상이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그제 ‘건설적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지만 의대 교수들은 “2000명 의대 증원·배정을 철회하라”며 집단 사직서를 제출했다. 어제도 한덕수 국무총리와 의료계 주요 관계자들이 만났지만 이렇다 할 진전을 보지 못했다. 의료계가 ‘2000명 증원 백지화’를 협상 전제조건으로 내세우는 건 환자들을 볼모로 시간을 끌겠다는 무모한 전략이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의대 교수들의 사표가 처리되기 전까지는 의·정이 협상을 끝내야 파국을 피할 수 있다.
문제는 의료계가 개원의 중심 단체인 대한의사협회(의협)와 전국의대교수협의회(전의교협), 전공의, 의대생, 병원들이 단일한 소통 창구를 마련하지 못해 제각각 입장을 내고 있다는 점이다. 전의교협이 제자들을 지키려고 정부와 협상하겠다고 나섰지만, 전공의들은 “중재를 요청한 적이 없다”며 선을 긋고 있다. 병원 근무 환경을 열악하게 만든 게 교수들이라며 “정부가 노조를 두고 사측과 만나는 셈”이라고 했다. 의협에 대한 전공의들의 불신도 크다. 2020년 의사파업 때 정부와 의협의 최종협상에 전공의들이 배제당한 상처가 있어서다. 게다가 어제 선출된 신임 의협 회장은 ‘의대 정원을 지금보다 줄여야 한다’는 대표적 강경파라 대화보다는 투쟁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오죽 답답하면 “의료계 단일 창구를 만들어 달라”고 촉구했겠나.
의료계 입장이 오락가락하고 전공의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것도 협상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 초기에 서울대 의대 비상대책위원장이 중재를 자처하며 보건복지부 차관과 만났지만 내부 반발이 나오자 하루 만에 사퇴했다. 전의교협 대표들이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에게 중재를 요청해 ‘전공의 면허정지 처분 유예’라는 실리를 챙기고도 협상에 응하지 않은 것도 모양이 사납다. 정부와 의료계가 타협안을 만들더라도 전공의들이 받아들일지 불투명하다. 이러니 의료계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더 커지는 것 아닌가.
의·정 협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의료계가 대표성 있는 대화 창구를 구성하는 것이 급선무다. 의료계 내부적으로 입장이 통일되지 않으면 정부와 협상을 하더라도 혼선을 자초하고 시간이 지체될 수밖에 없다. 환자단체들은 “우리의 목숨은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으로 희생되어도 좋을 하찮은 목숨이 아니다”라고 호소하고 있다. 의사들이 새겨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