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 입국한 중학생의 학교, 움틈학교 1회 졸업생이 올해 대학생이 되었다. 어느새 커서 대학생이 되었으니 대견하였으나 대학 문턱에 들어서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아버지가 입학을 만류했다. 외국인 전형으로 졸업해봐야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으니 시간 낭비하지 말고 돈을 벌라는 거였다. 아버지 성화를 피해 학비와 기숙사가 지원되는 지방대학에 등록한 후 숙식이 제공되는 지방 회센터에서 두 달간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제 고등학교를 마친 외국인 여자아이가 숙식이 제공되는 음식점에서 일을 한다니 걱정이 앞섰다. 안부를 챙기는 우리 직원에게 두 달간 사진과 문자로 소식을 전하던 아이가 드디어 대학교 교정을 찍어 올렸다. 그리고 덧붙였다. “회센터 사장님과 이모님들이 너무 고마웠어요.”
지난주 센터에 방문한 손님과 시설을 둘러보다 깜짝 놀랐다. 아무도 없어야 할 교실에 중학생 한 명과 초등학생 한 명이 같이 있었다. 5년 이상은 차이 나는 아이들이 한 반에서 뭘 하고 있나 의아해하는데 우리 직원이 서둘러 말했다. 중학생은 한국어가 전혀 안 돼서 학교에서 도움을 요청한 학생이고 초등학생은 편입학이 지연돼 갈 곳이 없는 아이란다. 한국어 공부가 시급해서 교실이 비어 있는 동안 오라고 했단다. ‘누가 시켰으면 이렇게 했겠나?’
복지팀 직원들과 회의하는 내내 심란했다. 외국 국적 동포인 아버지는 장애가 있고 한국에서 출생한 삼 남매는 체류비자 등록 기간을 놓쳐 미등록 상태라고. 어찌어찌 도움을 받아 학교 다니는 동안은 D-4 비자로 지내게 되었다고 했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 10대에 이른 아이들을 미등록 상태로 놔둔 부모의 무능함과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어야 할 것 같은 이 가정의 상황에 마음이 어지러웠다. 그래도 우리 직원은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는 동안은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최선이라며 담담해했다. 외국인 학생도 받을 수 있는 지원을 찾고 있다. ‘이주민 아이들의 상황에 흥분을 거두고 본론으로 들어가는 이런 저력은 어디서 왔을까?’
젊은 직원들이 동생 챙기듯 안부를 챙기고, 집에 말가니 있을 아이를 불러다 공부를 시키고, 부모 험담 없이 아이들을 도울 방법을 찾는다. 저런 애정이 어디에서 나올까? 우리 직원들은 이주라는 상황에 놓인 아이들과 부모를 만난다. 준비되지 않은 이주가 아이들을 얼마나 위축시키는지 부모는 또 얼마나 무능해지는지 곁에서 지켜본다. 측은지심은 곁을 내주는 동력이다.
그런데 회센터 사장님은 왜 그랬을까? 설령 일손이 아쉬워서 보인 고용주의 호의일지라도 “공장이나 가라”는 아버지에게 상처받은 청소년의 마음을 따듯하게 채웠다. 회센터 이모님들은 왜 그랬을까? 같은 중국인인가 했더니 한국인과 태국인이었단다. 집 떠나와 고된 노동을 해본 사람만이 아는 진한 눈물 때문인가 보다.
몸으로 세상을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주민 자녀는 저절로 곁을 내주게 되는 애틋한 존재다. 십시일반이라고 했던가, 내가 조금씩 내어준 곁이 모여 아이들의 상처가 아물고 학교 갈 용기가 생기고 한국 땅에 정착할 끌림이 생긴다. 머리로 세상을 만나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이민정책의 공백도 뭔가 부족한 이주민 부모의 공백도 메워가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