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뒷면을 들여다보면 화장품과 소비자가 처음 만나는 접점인 표시사항을 볼 수 있다. 화장품 회사는 제품을 구매해 사용하기 전에 소비자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주의사항과 사용된 성분 목록 그리고 혹시라도 궁금증이 생겼을 때 문의할 수 있도록 회사 연락처 등을 적는다.
화장품 표시 제도가 처음부터 이런 형태로 운영된 것은 아니다. 화장품법이 따로 제정되기 전인 1950년대 약사법에는 화장품에 기재되는 제품 명칭, 회사 이름과 연락처, 용량 정도만 정하고 있었다. 화장품에도 반드시 주의사항을 적도록 법령에 정한 것은 비교적 최근인 1990년대의 일이다. 2007년에야 소비자가 알레르기 같은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성분을 확인할 수 있도록 화장품에 사용된 모든 성분 목록을 용기나 포장에 적도록 했다.
소비자 정보 제공 강화는 용기 위의 한정된 면적 안에 기재해야 하는 화장품 특성상 영업자가 글자 크기를 줄이게 돼 소비자는 기재 사항을 알아보기 어렵고, 영업자는 표시 면적 확보에 힘들어한다.
최근 시행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e-라벨 시범사업은 소비자가 구매 시 제품 명칭과 사용기한 같은 핵심 내용을 큰 글씨로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바꿨다.
국민 중 성인 스마트폰 보급률은 97%에 육박한다. 심지어 디지털 소외계층이라 불리는 60대와 70대 이상 연령층에서도 스마트폰 보급률은 각각 98%, 85%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이는 우리나라가 코로나19 시절 QR코드로 식당 출입 기록을 남기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디지털 제도 도입에 적극적이고 선도적인 국가였던 덕분이다. 그럼에도 스마트폰이 없는 3%의 국민에 대한 고려는 꼭 필요하다.
식약처는 법률 반영에 앞서 소비자 설문과 업계의 분석을 통해 편의성과 만족도, 가독성과 함께 업계의 비용 절감 등 경제적 효과와 e-라벨 사업 시범사업의 효과를 여러 방향에서 분석해 면밀히 검토할 예정이다.
화장품 분야에서는 전 세계의 화장품협회 간 국제 협의체인 ‘세계화장품협회협의체(IAC)’에서 화장품 기재 사항을 e-라벨로 제공하는 방법에 대한 지침을 마련했지만, 그 이후 추가적인 논의가 없는 상황이다. 일부 국가에서 기재 사항의 번역본 같은 부가 정보를 QR코드로 제공하고 있지만, 이는 제품 용기에 모든 정보가 적혀 있는 경우만 해당한다. 제품 용기의 기재를 e-라벨로 전환해 제공하는 이번 시범사업은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 표시 제도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첫 사례로, 미국·캐나다·대만 등에서도 결과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국민 건강은 가장 중요한 과제다. 식약처는 소비자와 업계 모두 다 만족할 수 있는 합리적인 제도를 만들어 가는 것 또한 규제 당국자로서의 책무로 여기고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