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협상중인데… 고민됐던 ‘주한미군에 핵무기’ 외교문서 공개 여부 [외교문서 비밀해제]

정부가 1993년 주한미군 핵무기 배치 사실이 담긴 1950년대 외교문서를 공개할지를 두고 심사숙고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외교부가 29일 공개한 1993년 비밀해제 외교문서에는 당시 진행 중이던 북·미 핵협상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주한미군 핵무기 배치와 관련된 외교문서의 공개 여부를 두고 정부가 고심했던 흔적이 엿보인다.

 

정부는 국민 알권리 보장과 외교행정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생산된 지 30년이 지난 외교문서를 매년 공개하고 있다. 다만 상대국과 외교마찰 가능성이나 현재 진행중인 협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면 심의를 거쳐 비공개 처리하기도 한다.

 

공개된 외교문서를 보면, 외무부는 1993년 10월 9일 국방부 장관에게 협조 공문을 보내 한국군 병력 감축 및 재편성, 미 공군 핵무기 배치 등에 대한 과거 외교문서를 공개해도 될지 의견을 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정부가 공개를 고심했던 문건을 보면 국내에 핵무기가 배치됐었다는 사실이 구체적으로 담겼다.

 

일례로 김정렬 국방장관이 1958년 1월 28일 이승만 대통령 앞으로 보낸 서한을 보면 “각하께서도 알고 계시겠지만, 1958년 1월 22일부터 280㎜ 원자포가 한국에 반입됐다”는 문장이 나온다.

 

김 장관은 또 같은 해 4월 4일 이 대통령에게 보고한 문서에서 “발사대 6기와 핵탄두 60발을 갖춘 미 공군 중거리유도탄부대 중 하나가 오산공군기지(K-55)에 배치될 예정”이라고 언급했다.

 

당시 주미대사관과 국방부 등은 북한 핵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는 주한미군 핵무기 배치와 관련된 문서는 공개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주미대사관은 1993년 10월 19일 외무장관에게 보낸 전문에서 주한미군 핵무기 배치를 기술한 문서를 공개하면 “한·미 양국이 지금까지 견지해온 한반도 핵무기 배치 관련 NCND(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정책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또 “북측이 이를 한반도 핵문제 야기의 책임소재에 관한 선전자료 내지 주한미군기지 사찰 주장의 근거로 내세울 개연성이 매우 크다”며 “최소한 북한 핵문제 해결시까지는 동 관련 문서 일체를 공개하지 않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방부도 “최근 북한 핵문제가 최대 안보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50년대 말부터 이미 주한미군에 핵무기가 배치됐다’는 사실의 공개는 남북회담이나 미북 핵협상 과정에 부정적 파급효과가 예상외로 클 수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아울러 ‘북침통일’에 대한 문건을 거론하며 “동 문서가 공개될 경우 평화적 통일을 공약하고 있는 우리 정부의 대내외적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북한에 남북대화 중단과 모험적 도발 등의 구실을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에 “주한미군 핵 관련 내용이나 북침통일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외교문서들은 북한 핵문제가 완전히 해결되거나 남북대결 구조가 해소된 이후에 공개하는 것이바람직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강조했다.

 

당시는 북한 핵문제가 본격적으로 국제사회의 현안으로 부상하던 때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핵시설 사찰 요구에 반발하며 1993년 3월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한다고 선언하면서 북핵 문제가 위기 국면에 접어들었고 그해 6월 사상 첫북미회담이 열리는 등 이를 둘러싼 협상도 숨 가쁘게 이뤄지고 있었다.

 

이미 노태우 대통령이 1991년 9월 24일 제46차 유엔총회 연설에서 주한미군의 핵 철수 문제를 협의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고, 이어 미 행정부가 사흘 뒤 핵무기 한반도 철수를 결정했다.

 

따라서 공개 여부를 놓고 고민하던 1993년 당시 남한엔 핵무기가 존재하지 않았지만, 구체적인 과거 보유 기록이 공식문서로 확인되는 것만으로도 북한을 자극해 협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소지가 다분하다고 우려한 것이다.

 

결국 해당 문서들은 당시엔 공개하지 않는 쪽으로 결정됐다가 이번에 일괄 공개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