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광우의시네마트랩] 신선함과 익숙함 ‘패스트 라이브즈’

한국계 캐나다인 셀린 송 감독의 장편 데뷔작 ‘패스트 라이브즈’가 미국에서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후보에 올랐었다. 이 현상은 미국이 이민자들로 만들어진 사회라는 특징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 영화의 첫 장면은 어느 바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한국 여성과 유대인 남자, 그리고 한국 남성을 보여주면서 이들의 관계를 추측하는 남녀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영화는 부모와 함께 캐나다에 이민 갔다가 뉴욕에 와서 작가의 삶을 사는 노라가 서울에 사는 초등학교 시절 단짝인 해성과 페이스북으로 만나고 뉴욕에서 다시 만나 짧은 시간을 보내는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이 영화에서 제기하는 인연이라는 개념은 비아시아계 미국인들에게는 신선할지라도 우리에게는 그리 새롭지 않은 개념이다. 인연이라는 말을 쓰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미 각종 소셜미디어로 예전 학교 동창들을 다시 만나서 모임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는 한국의 극장가에서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단지 우리가 이제 의식하지 않을 정도로 당연하게 여기는 개념을 미국인들에게 소개한 것이 이 작품의 미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아시아 영화가 본국보다 서양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이안의 ‘와호장룡’(2000)이다. ‘와호장룡’은 미국에서 개봉된 외국어 영화로서는 최초로 1억달러 이상의 흥행실적을 거두었고 그해 아카데미상을 4개 받았다. 그렇지만, 정작 홍콩에서 개봉했을 때에는 새로운 것이 없다는 반응이 있었다. 무협영화의 본고장인 홍콩의 관객들에게는 이미 익숙한 소재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작품의 성공으로 인해 이후에 미국 내 예술영화관에서 홍콩 무협영화 회고전이 열리고, 장이머우의 ‘영웅’이나 ‘비도문’, ‘황후화’ 등이 개봉되는 통로를 열었다.

미국은 각 이민자 집단이 자국에서 가져온 문화를 소개하고 교류하면서 미국문화를 만든다. 최근에 우리가 평소에 즐겨먹는 음식들이 미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는 소식을 해외뉴스와 유튜브를 통해서 쉽게 본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이 이제 그들에게 신선한 것이 되었다. 영화에 나오는 ‘인연’이라는 단어가 언젠가는 영어사전에도 등재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노광우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