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적 자본주의의 위기/마틴 울프/고한석 옮김/페이지2북스/3만8000원
인류는 산업혁명을 통해서 농업이 중심이던 경제에서 산업이 중심인 경제로 빠르게 전환했다.
분권화된 경쟁과 민주적 동의를 통한 협력을 추구하는 시장 자본주의였다. 산업혁명을 거쳐 2000년에 이르렀을 때 주요 선진국의 1인당 에너지 포집량은 농경 사회에 비해 무려 7배 증가했다고, 스탠퍼드대 역사학자 이언 모리스는 추정했다.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시장과 경쟁, 사적 경제 행위, 사유재산이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경제를 가리키고,
이런 체제를 시장 자본주의라고 부른다. 다만 시대적 상황에 따라 규제 개입, 과세, 공공지출과 관련해 정부의 개입과 규모,
성격에 따라 더 다양한 특성을 갖게 됐다.
시장 경제가 부상하자 이에 부응하는 정치적 민주주의에 대한 압력 역시 커지면서 민주주의가 성장되기 시작했다. 1893년 뉴질랜드가 여성에게 처음으로 완전한 참정권을 부여하는 것을 시작으로 1906년 핀란드, 1919년 독일, 1928년 영국 등에서 차례로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했다. 야당에 대한 보호, 언론의 자유, 법치주의 등이 결합하면서 민주주의가 틀을 갖춰 갔다.
이와 관련,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와 시민으로서 시민활동 참여, 모든 시민의 시민적 권리와 인권의 동등한 보호, 모든 시민에게 동등하게 적용되는 법치라는 4가지 요소가 필요충분조건이라고 후버연구소의 정치학자 래리 다이아몬드는 강조했다.
저자는 고소득 국가에서 직면하고 있는 작금의 민주주의적 자본주의 위기는 경제적 불평등, 거시 경제의 불안정, 민주적 제도와 엘리트에 대한 신뢰 저하라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근본 원인에는 중산층의 공동화가 있다고 분석한다.
“민주적 제도, 글로벌 시장경제, 정치 및 경제 엘리트에 대한 신뢰는 최근 수십년 동안 특히 기존 고소득 국가에서 약화됐다. 이는 보호무역주의, 이민에 대한 적대감, 그리고 무엇보다 권위주의적 포퓰리즘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으로 나타났다. 가장 큰 원인은 2500년 전 아리스토텔레스가 입헌 민주주의의 핵심 구성원으로 지목한 중산층의 공동화 현상이다.”
즉, 치솟는 불평등, 막다른 골목에 처한 일자리, 거시 경제의 불안정성 등 경제가 나빠지면 중산층, 특히 저학력 남성 중산층을 중심으로 실망이 확산하고 현실에 분노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자신과 자녀들에게 받을 것으로 기대했던 합리적 보상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경제 실망에서 초래된 이들 중산층의 실망과 분노는 곧 포퓰리즘 선동가들의 냉소적인 호소에 쉽게 감화된다. 즉, 좌파 또는 우파 포퓰리스트들은 이들의 경제적 실망을 외부인, 즉 국내의 소수 민족과 외국인, 이주민 탓으로 돌리고 국제무역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득세했다. 약탈적 자본주의와 선동적 정치가 시의적절하게 결합한 것이다.
저자는 자본주의는 민주주의 없이는 장기적으로 생존할 수 없고 민주주의 역시 시장 경제 없이는 장기적으로 생존할 수 없다며, 자본주의는 결국 민주주의와 안정적인 결혼 생활을 통해서만 번영을 구가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서 시장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두 영역 모두 쇄신해야 하고, 두 부문 간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부를 분권화하고 정치에서 돈의 역할을 줄이는 등 포퓰리즘에 의해서 민주주의가 훼손되는 것을 경계하는 한편, 자본주의에선 새로운 형태의 ‘뉴’뉴딜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향상되고 폭넓게 공유되며 지속 가능한 생활 수준, 좋은 일자리, 기회의 평등,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안전망, 소수를 위한 특권의 종식 등등.
“위험은 바로 우리 코앞에 와 있다. 지금은 거대한 두려움과 희미한 희망이 공존하는 순간이다. 우리는 위험을 인식하고 희망을 현실로 바꾸기 위해 싸워야 한다. 우리가 실패하면 정치적 자유와 개인적 자유라는 빛이 세상에서 다시 한 번 사라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