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 부인땐 檢조서 증거로 못써 “공판과정서 범죄 규명 난항” 지적 “피신조서 다시 증거 채택” 목소리
“법정 진술 원칙… 신중해야” 반론도
“‘북한에서 방북 비용을 요구하는데 김성태 쌍방울그룹 회장이 처리할 거다’라고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에게) 보고했고, 이 지사가 ‘그렇게 하라’고 지시했다.”
쌍방울 불법 대북 송금 사건의 핵심 인물인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지난해 6월 검찰 조사에서 이같이 자백한 진술은 재판에서 쓸 수 없게 됐다. 이 전 부지사 측이 돌연 “검찰 압박에 허위 진술을 했다”며 피의자 신문조서가 증거로 채택되는 데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22년 1월 검찰이 피의자를 신문해 진술을 기록한 피의자 신문조서(피신조서) 내용을 당사자가 법정에서 부인할 경우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게 개정 형사소송법이 시행되면서 피고인들이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검찰이 공판 과정에서 범죄 실체를 규명해 유죄판결을 이끌어내기가 어려워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29일 대검찰청과 한국형사소송법학회가 개최한 형사법포럼에서 발제자로 나선 최윤희(43·사법연수원 39기) 서울중앙지검 중요범죄조사부 검사는 “주범인 피고인이 개정법을 악용해 수사 과정에서 피고인과 공범 진술이 법정에 현출되지 못하게 하고, 공범들 진술을 번복시켜 처벌을 면하는 등 실체 규명이 곤란해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개정 전 형사소송법은 피고인이 피신조서 내용이 자신의 진술과 동일하게 기재돼 있다고 인정하고, 그 조서에 기재된 진술이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이뤄졌음이 증명되면 피신조서를 증거로 쓸 수 있었다. 피고인이 내용을 부인하더라도, 영상 녹화물 등 객관적 방법으로 증명되면 증거로 쓸 수 있다는 예외 조항이 있었다.
개정 형사소송법은 피고인이나 그 변호인이 피신조서 내용을 인정할 때 한해서만 증거로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예외 조항도 삭제됐다. 이에 따라 피고인이 법정에서 조서 내용을 부인하기만 하면 피고인 본인뿐 아니라 공범에 대해 검사가 작성한 피신조서를 증거로 쓸 수 없다. 이로 인해 공범의 진술이 가장 중요한 증거인 사건에서 공범 관계를 입증하거나 배후에서 범행을 지시하는 실질적 총책이나 교사범을 밝히기도 어려워졌다는 지적이다. 재판 단계에서 이미 검사가 조사한 내용을 증인신문으로 반복해야 하는 사례가 늘어 재판이 지연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최 검사는 “피의자가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은 증거 가치가 매우 크기에 피신조서를 다시 증거로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피신조서를 증거로 택하는 데 신중해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판사 출신인 김웅재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진술은 법관이 그 태도를 관찰할 수 있는 상태에서 위증의 벌로 경고를 받은 채 대립 당사자의 반대신문을 받으며 이뤄진 것만 증거로 될 수 있는 게 원칙”이라며 “법정 외에서 이뤄진 진술을 증거로 쓸 특별한 필요성이 있는 등 예외적 요소가 갖춰져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