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 없이 건강하게 뛰는 ‘냉철한 승부사’ 모마를 선택한 것은 현대건설의 ‘신의 한 수’였다

레티치아 모마 바소코(카메룬)의 위력이 이 정도였단 말인가. 현대건설의 외국인 선수 모마가 2023~2024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에서 ‘하드캐리’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전후위를 가리지 않고 흥국생명 코트를 찢어놓는 강타로 공격의 버팀목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모마의 맹활약에 현대건설은 챔피언결정전 1,2차전을 모두 풀 세트 접전 끝에 3-2로 승리하며 V3에 단 1승 만을 남겨두고 있다.

 

◆ 3년차 외국인 선수 모마의 현대건설 지명, 처음엔 갸우뚱했다

 

모마는 2023~2024시즌이 V리그에서 3년차 시즌이다. 2021~2022시즌 트라이아웃에 참가한 모마는 7순위로 GS칼텍스에 지명됐다. 모마의 신장은 외국인 선수 치고는 다소 작은 1m84에 불과하다. 신장은 작지만, 출중한 피지컬을 앞세운 파워가 일품이다. 워낙 힘이 좋다보니 그의 강타가 블로킹벽을 뚫기만 하면 수비를 해내기에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여기에 파워를 앞세운 서브도 일품이다.

 

V리그 데뷔 시즌에 모마는 득점 1위(819점), 공격 종합 1위(47.30%), 서브 2위(세트당 0.411개)를 기록하며 야스민과 더불어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군림했다. 득점과 공격 종합 타이틀에 힘입어 2021~2022시즌 베스트7의 아포짓 스파이커 부문도 모마의 차지였다.

 

GS칼텍스의 모마와의 재계약은 당연했다. 2년차 시즌이었던 2022~2023시즌에도 모마는 득점 2위(879점), 공격 종합 2위(43.68%), 서브 3위(세트당 0.246개)에 오르며 맹활약했지만, GS칼텍스는 모마와의 재계약을 포기했다.

 

현대건설은 2023~2024 트라이아웃에 나온 모마를 선택했다. 전체 5순위였다. 3순위 지명권이 나온 흥국생명이 옐레나 므라제노비치(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의 재계약을 선택하면서 사실상 4순위 지명이었다. 선택 당시만 해도 모마의 뛰어난 파워를 앞세운 공격력은 다들 인정하지만, 1m84의 다소 작은 신장으로 인한 한계도 명확한 모마를 지명한 것을 두고 의구심이 존재했던 것도 사실이다.

 

◆ 모마와 현대건설의 궁합은 찰떡이었다

 

모마의 작은 신장을 가리기엔 현대건설이 딱이었다. 현역 최고의 ‘블로퀸’ 양효진(1m90)에 국가대표 미들 블로커인 이다현(1m85)을 보유해 여자부 7개 구단 중 높이로는 전혀 빠지지 않는 현대건설은 외국인 선수 치고는 작은 신장인 모마에게 안성맞춤이었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모마는 한 시즌 내내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 모마는 올 시즌 현대건설의 36경기 141세트를 전부 소화했다. 지난 시즌 개막 15연승을 달리며 독주했으나 야스민의 부상 낙마로 인해 정규리그 2위에 그치고, 플레이오프에서 도로공사에 2전 전패로 패퇴했던 현대건설에겐 외국인 선수가 부상 당하지 않고 한 시즌을 오롯이 뛰었다는 것만으로도 모마의 영입은 대성공이었다.

 

올 시즌 모마는 득점 4위(886점), 공격 종합 3위(44.70%), 서브 10위(세트당 0.184개)를 기록했다. 서브는 앞선 2년에 비해 다소 떨어진 모습이었지만, 특유의 파워를 앞세운 공격은 여전했다. 득점과 공격 종합 순위는 GS칼텍스 시절에 비해 떨어졌지만, 적어도 현대건설이 외국인 선수 싸움에서 지는 일은 없게 했다. 모마가 상대 외국인 선수와 대등하게만 싸워주면 양효진-이다현의 미들 블로커와 위파위(태국)-정지윤의 아웃사이드 히터의 힘으로 상대를 이길 수 있는 힘은 충분했다.

 

현대건설은 시즌 막판 위파위가 어깨 부상으로 신음하고, 정지윤이 슬럼프에 빠지면서 아웃사이드 히터들의 생산력이 크게 떨어졌다. 이런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것은 모마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는 것이었다. 모마는 5라운드 166점, 6라운드 181점을 올리며 한층 더 기어를 올리며 현대건설의 정규리그 1위를 이끌었다.

 

현대건설의 챔피언결정전 직행을 결정지은 지난달 16일 페퍼저축은행전에서 모마는 공격 성공률 54.24%에 35점을 몰아쳤다. 1세트를 내주면서 한 세트만 더 내주면 정규리그 1위가 물 건너가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모마는 특유의 무표정으로 묵묵하게 팀 공격을 이끌었고, 현대건설은 2,3,4세트를 내리 따내며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정규리그 1위를 확정했다.

 

◆ 챔프전 들어 더욱 무서워진 모마

 

챔피언결정전 들어 모마는 한층 더 무서워져서 돌아왔다. 1차전에서 현대건설은 열흘 이상 실전 공백이 있었던 여파가 드러나며 1,2세트를 내주고 패배 위기에 몰렸다. 현대건설의 해결책은 모마의 점유율 대폭 올리기였다. 3세트부터 모마의 공격 점유율을 50%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4세트엔 68.29%, 5세트엔 59.26%에 달했다. 모마의 강철 어깨는 현대건설의 리버스 스윕 승리로 인도했다.

 

2차전에선 모마의 어깨는 가벼워질 수 있었다. 1차전에서 한 자릿수 득점에 그쳤던 아웃사이드 히터 정지윤(15점)과 위파위(12점)의 득점력이 다소 살아나면서 모마는 이단연결된 공과 오픈 상황에 집중해서 공격을 할 수 있었다. 현대건설이 세트 스코어 1-2로 뒤진 4세트 63.64%의 공격 성공률로 7점을 몰아치며 승부를 풀세트로 끌고간 모마는 5세트에서도 66.67%의 공격 성공률로 6점을 올리며 현대건설의 승리를 이끌었다. 5세트 13-12에서 김연경의 오픈 공격을 위파위가 디그해낸 공을 모마의 백어택으로 결정지은 장면은 이날 승부를 가른 순간이었다. 14-13에서 양효진의 두 번의 시간차가 유효 블로킹으로 걷어올려지며 실패했고, 경기를 끝낸 것은 또 한 번 모마의 백어택이었다.

 

2차전을 마치고 정지윤과 함께 수훈 선수로 인터뷰실에 들어선 모마는 승리 후에도 특유의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1차전 84개, 2차전 60개까지 두 경기에서 144번의 공격을 해낸 어깨가 괜찮냐는 질문에 모마는 씩 웃으며 “Very good!”(정말 괜찮아)으로 짧게 답했다.

 

V리그에서 챔프전이 처음이라 긴장되진 않느냐고 묻자 모마는 “한국에선 챔프전이 처음이지만, 다른 리그에서 챔피언십 경기를 뛰어봤다. 침착하게 팀을 도우겠다는 마음으로 뛰고 있다”고 답했다.

 

모마는 경기를 끝낸 백어택을 성공시킨 이후에도 무덤덤한 표정일 유지했다. 냉철한 승부사 같은 기질이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이에 대해 묻자 “내가 웃으면서 경기에 임할 땐 우리팀 경기가 잘 안풀리는 것 같더라”라면서 “화가 난 건 아니다. 집중한 표정이다. 나는 내게 맡겨진 일을 하고 있다. 그럴 땐 그런 표정이 나오는 듯 하다”고 답했다.

 

한 경기만 패하면 챔프전 우승 트로피를 내줘야 하는 흥국생명은 3차전에서 배수의 진을 치고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3차전에 대한 각오를 묻자 모마는 “지난 시즌에 나온 챔프전 리버스 스윕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상대는 플레이오프를 3경기나 뛰고 올라와서도 이렇게 좋은 경기를 해주고 있다. 존경심이 들 정도다. 나는 내 일에 집중할 것”이라면서 “흥국생명 홈인 인천에선 응원 소리가 유독 크지만, 그런 분위기를 좋아한다. 같이 싸우는 것 같다. 내겐 점수를 더 내고 싶은 마음을 들게 한다”고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