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진의 ‘에스파냐 이야기’] (24) 그라나다 (2) : 폐허 속에서 찾은 진주, 알람브라 궁전

멀고도 가까운 나라 스페인

스페인은 우리나라와 수교한 지 올해 73주년을 맞은 유럽의 전통우호국이다. 과거에는 투우와 축구의 나라로만 알려졌으나 최근 들어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찾는 주요한 유럽 관광지다. 관광뿐 아니라 양국의 경제· 문화 교류도 활발해지는 등 주요한 관심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은진의 ‘에스파냐 이야기’ 연재를 통해 켈트, 로마, 이슬람 등이 융합된 스페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소개한다.

 

“우리는 코마레스 타워의 이 웅장한 전망대에서 즐거운 기행을 멈춰야 합니다. 태양은 이미 산 위로 떠오르고 있으며, 타오르는 빛으로 궁전의 창을 채우는 데 온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머리는 타오르는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기와지붕 위에 놓인 우리의 발은 그 뜨거움을 지탱하지 못합니다. 아래로 내려가 사자들의 분수를 둘러싸고 있는 기둥 아래로 대피합시다.”

 

워싱턴 어빙 초상화. 다니엘 헌팅턴 作 ⓒ National Portrait Gallery, Smithsonian Institution

미국의 낭만주의 작가 워싱턴 어빙의 책 <알람브라의 이야기 Cuentos de la ALHAMBRA>에 나오는 구절이다. 무어인들이 떠난 이 궁전에는 가톨릭 군주가 들어왔다. 가톨릭의 무관심으로 쇠락해가던 알람브라는 18세기에는 나폴레옹의 군사 주둔지로 사용되면서 거지들의 소굴로 전락하게  됐다. 허물어지고 잊혀 가던 알람브라는 어빙의 소설을 통해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된다. 그는 약 800년간 이슬람이 스페인을 지배하면서 남긴 가장 위대한 보물인 알람브라 궁전을 폐허로부터 다시 찾아냈다. 스토리의 힘은 위대하다.

 

어빙은 3년 동안 마드리드의 미국대사관에 근무했다. 그는 스페인의 역사와 문화에 심취한 나머지 1829년 알람브라 궁전으로 온다. 폐허가 되어가는 궁전에서 기거했다. 그의 발자취를 찾고자 어빙이 머문 방으로 발걸음 옮겼다. 방 위에는 “워싱턴 어빙은 이 방에서 1829년 알람브라 이야기를 썼다”라고 대리석에 새겨져 있다. 어빙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하다.

 

워싱턴 어빙이 기거한 방. 필자 제공

그는 알람브라에 머물며 보고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1832년 5월 영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이 책을 발간한다. 책에는 알람브라에 관한 총 45개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어빙의 책은 전 세계적인 관심을 끌게 됐고, 1851년에는 개정판까지 나오게 됐다. 이후 스페인 정부는 파괴되고 방치된 알람브라 궁전의 많은 부분을 복구했다. 이러한 노력은 빛을 발해 1984년에는 알람브라 궁전, 헤네랄리페 정원과 그 옆에 있는 알바이신 언덕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카를로스 5세 궁전. 르네상스 스타일로 건축된 이 건물의 1층에 알람브라 박물관이 있다. 필자 제공
헤네랄리페(Generalife). 필자 제공  
삼나무 줄기와 19세기에 만든 분수가 인상적인 술탄의 정원(Jardín de la Sultana). 필자 제공

알람브라 궁전에서 발길을 옮겨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함께 지정된 헤네랄리페(Generalife)로 간다. 13세기에서 14세기 사이에 건설된 헤네랄리페는 알람브라 궁전 옆 세로 델 솔(Cerro del Sol) 경사면에 자리 잡았다. 이곳은 술탄의 여름 별궁이자 휴양지였다. 그라나다의 광활하고 비옥한 지형은 농사와 조경에 적합했다. 무어인들은 다로 강에서 헤네랄리페까지 거대한 운하를 이어 정원을 만들었다. 이 별궁은 중앙에 수영장이 있는 넓은 파티오와 양쪽 끝에 있는 두 개의 건물로 구성돼 있다. 1492년 이사벨 여왕이 아람브라요 군주에게 헤네랄리페를 하사해서 베네가스 가문이 소유하게 됐다. 이후 그라나다 주 정부와의 긴 소송을 거쳐 1921년 주 정부에 반환된 사연을 가지고 있다. 

 

산니콜라스 전망대에서 바라본 알람브라 궁전의 야경. 필자 제공 

낮의 알람브라와 밤의 알람브라는 그 모습이 확연히 다르다. 야경을 꼭 보러 가야 한다. 산니콜라스 전망대에서 보는 알람브라의 야경은 감동적이다. 밤에 보는 알람브라 궁전은 낮에 봤던 거대함은 사라지고 섬세하고 소박함이 돋보인다. 

 

알람브라는 스페인 문화의 개방성과 공존을 상징한다. 비록 자신들의 나라를 지배했던 이슬람의 문화지만 스페인 사람들은 이를 거부하거나 없애버리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에 다시 품었다. 그 결과, 알람브라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가장 스페인다운 문화적 걸작이 되었다.

 

 

이은진 스페인전문가·문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