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이 넘는 크리스마스 휴가에는 어디를 가볼까. 가을 학기부터 폴란드의 한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쳐 온 그는, 이번 휴가 때에 다른 유럽국을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하고 여행 정보를 찾고 있었다. 한국어 강사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해 1년간 한국어를 가르치기로 한 그였다.
한 시사주간지를 살펴보다가 유럽통신원이 쓴 탈북민에 관한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벨기에를 유령처럼 떠도는 한 탈북 청년에 대한 기사였다. 탈북 청년이 유럽까지 와서 난민 신청을 했다고?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4년 전 등단했던 소설가 조해진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우선 궁금했다.
벨기에로 오라는 통신원의 이메일을 받고서 유로라인 버스에 몸을 실었다. 애초 먼 길이라고 생각했으면 비행기를 탔으련만, 짧은 유럽 생활에 거리감각이 없어서 버스를 탄 것이다. 버스로는 무려 열 시간이 넘는 긴 여행. 오랜 시간 버스를 타고 가면서 자연스럽게 어떤 분위기에 녹아들었다.
로기완은 함경북도 온성군 세선리 제7작업반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십 대의 탈북 청년으로, 함께 국경을 넘은 어머니가 중국에서 자신을 위해 비극적으로 숨진 뒤 피 같은 650유로를 가슴에 품고 벨기에에 넘어와서 오직 살아남는 것을 목적으로 분투한다. 김 작가는 전직 의사 박윤철의 도움을 받아서 로기완의 행적이 담긴 일기와 자술서를 구해 로기완의 자취를 밟아가며 글을 써나간다. 이를 통해서 로기완의 마음과 윤주의 마음을 더듬어 가게 되고, 마침내 회피하고 있던 자신의 마음을 대면하게 되는데.
“이니셜 L은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세상으로 나를 이끌어주는 암호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건, 내가 내 인생 속으로 더 깊이 발을 들여놓도록 인도하는 마법의 주문에 가까웠다. 익숙한 화면이 오버랩된다.”
탄탄한 작품성을 입증해 온 젊은 작가 조해진이 천착한 탈북 청년 로기완의 마음과, 타인에 대한 사려 깊은 연민과 공감의 방식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작가적 여로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조 작가를 지난달 28일 전화로 만났다.
―소설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부터 허구인가.
“실제로 로기완을 만나지도 못했고, 그를 취재한 통신원을 통해 그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뿐이다. 당시 이십 대 청년으로, 벨기에 경찰에 의해 고아원으로 보내진 것까지는 소설과 동일하다. 하지만 로기완이 라이카와 영국으로 이주해 함께 사는 것을 비롯해 로기완의 이후 행적은 모두 허구다. 제가 여행을 하면서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이 거리를 다녔다면 어땠을까 하고 상상했다.”
―김 작가는 윤주 문제로 고민하다가 로기완을 만나러 훌쩍 벨기에에 오게 된다.
“연민의 방식을 놓고 재이나 김 작가의 생각 모두 부분적으로 맞다고 생각한다. 다만 김 작가는 윤주 사건을 계기로 로기완의 행적을 찾아가면서 공감이나 연민에 이르는 과정 자체가 중요할 수 있겠구나, 그것이 최종적으로 우리가 사랑하는 이유가 되는구나라는 걸 배워가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소설과 관련해 혹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탈북인이라는 설정만 보고 반북소설처럼 받아들이는 분들도 있더라. 전혀 반북소설이 아니다. 인간 로기완을 본 것뿐이다. 아울러 저는 국가나 사회 차원에서도 어떤 연민이나 공감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영화를 봤는지, 소회가 있을 텐데.
“여러 번 봤다. 영화와 소설의 화법이 다르다는 것과 영화를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들어갔다는 걸 알기에 지금은 어떤 말도 조심스럽다. 다만, 로기완을 성실하고 품위 있는 인물로 쓰고 싶었는데 영화에도 그것이 반영돼 있더라. 13년 동안 이 소설을 포기하지 않았던 용필름 임승용 대표에 감사하다고 꼭 말하고 싶다.”
1976년 서울에서 나고 자란 조해진은 2004년 중편소설 ‘여자에게 길을 묻다’를 ‘문예중앙’에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등단 이후 장편소설 ‘한없이 멋진 꿈에’, ‘로기완을 만났다’, ‘아무도 보지 못한 숲’, ‘여름을 지나가다’, ‘단순한 진심’ 등을, 소설집 ‘천사들의 도시’, ‘목요일에 만나요’, ‘빛의 호위’ 등을 발표했다. 신동엽문학상, 젊은작가상, 이효석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받았다.
―앞으로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지.
“일단 꾸준히 쓰고 쓸 수 있는 데까지 지치지 않는 작가가 되는 것, 지금은 그게 전부다.(롤 모델이 있는지) 사회적인 이야기를 외면하지 않는 작가를 좋아한다. 외국 작가로는 ‘숨그네’를 쓴 독일 작가 헤르타 뮐러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쓴 벨라루스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등을 좋아한다.”
소설가 조해진은 물기를 머금은 듯한 목소리로 수화기 너머에서 밀려오는 궁금증을 하나씩 조곤조곤 채워 나갔다. 아마 이날 기자의 질문은 연민의 방식에서 자주 맴돌았을 것이다. “연민이란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어떻게 만들어져서 어떻게 진보하다가 어떤 방식으로 소멸되는 것인가.”
몇 해 전부터 서울의 집에서 전업작가로 글만 쓰고 있다는 그는, 아마도 도시가 불온한 어둠으로 포위될 때면 사람들의 마음을 찾아 나설 것이다. 그리하여 낭떠러지 같은 경계의 끝자락에서 자주 서성이고, 드넓은 광장에서 외로움에 고개 숙이며, 뒷골목에서 처절한 실패로 눈물 흘리는 이들에게 연민과 공감, 연대의 모스부호를 보낼지도 모른다. 힘겹게 그러나 쉬지 않고, 마치 먼 우주로 교신하듯, 천국의 문을 노크하듯. Knock, knock, knockin’ on heaven’s door(녹, 녹, 노킹 온 헤븐스 도어)….
“미안하다는 무책임한 말이 아니라, 우리를 막는 것은 없으니 우리는 언제까지고 포기하지 않아야 하며 반드시 만나야 한다는 절대적인 말, 그런 솔직함. 그건 내가 원했던 이상적인 대화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