쇄신 칼 빼든 정용진… 실적 부진 계열사 CEO 물갈이 ‘신호탄’

신세계그룹 혁신 시동 걸어

정, 회장 승진 25일만에 인사 단행
신세계건설 대표 전격 경질 시켜
이마트 첫 적자 초래한 책임 물어
후임 재무통 허병훈 부사장 내정

수년간 적자 G마켓·SSG닷컴 등
수시 인사 예고로 다음 타깃 될 듯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승진 25일 만에 신세계건설 부진의 책임을 물어 대표이사를 경질하며 인적 쇄신 칼을 빼 들었다. 책임경영과 성과주의에 초점을 맞춘 인사제도를 강화해 그룹 전반에 혁신 시동을 걸겠다는 취지다.

 

신세계그룹은 신세계건설 정두영 대표를 경질하고 신임 대표로 허병훈(사진) 경영전략실 경영총괄 부사장을 내정했다고 2일 밝혔다.

서울 용산구 이마트 용산점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인사는 지난달 8일 정 회장 승진 이후 단행한 첫 쇄신 인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지난달 26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3년 연임이 확정된 정 대표를 일주일 만에 경질했다는 점도 매우 이례적이다. 정 회장은 지난해 11월 그룹 컨트롤타워인 경영전략실 개편과 함께 성과에 맞는 공정한 보상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인사제도를 강조해 왔다.

 

첫 쇄신의 칼날은 모기업 이마트의 사상 첫 영업손실을 초래한 신세계건설로 향했다. 신세계건설은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른 분양 실적 부진 등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으며 지난해 연결 기준 영업손실만 1878억원을 기록했다. 그 여파로 이마트는 지난해 연결 기준 29조4722억원의 역대 최대 매출을 거두고도 사상 첫 연간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이로써 정 대표는 2022년 10월 대표이사직에 오른 지 1년6개월 만에 물러나게 됐다. 신세계건설 영업본부장인 김상윤 상무와 영업담당인 정성진 상무보도 함께 경질됐다.

 

신임 대표로 내정된 허 부사장은 재무 전문가다. 1988년 삼성그룹에 입사해 구조조정본부 경영진단팀, 삼성물산 재무담당, 미주총괄 최고재무책임(CFO) 등을 거쳤다. 2011년부터 호텔신라로 이동해 경영지원장 겸 CFO를 맡았고, 2018년 7월 신세계그룹에 입사해 전략실 기획총괄부사장보, 지원총괄 부사장, 관리총괄 부사장, 백화점부문 기획전략본부장, 전략실 재무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허 내정자는 잠재적 리스크 선제 대응과 지속적인 추가 유동성 확보 등을 통해 부채비율을 낮춰 신세계건설의 재무 안정성을 개선하고 장기적 사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마련하는 데 역량을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정용진 회장(왼쪽)과 허병훈 대표이사

신세계건설은 최근 영랑호리조트 흡수합병, 회사채 발행, 레저부문 양수도 등을 통해 상반기 도래 예정 자금보다 훨씬 많은 유동성을 확보하며 재무 건전성을 강화하는 데 힘써 왔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그룹 핵심 재무통인 허 부사장을 신임 건설 대표로 내정한 것은 그룹 차원에서 건설의 재무 현안을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신세계그룹의 이번 인사를 두고 실적이 부진한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물갈이의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그룹 안팎에서는 수년간 적자를 지속하는 G마켓, SSG닷컴 등 그룹 온라인 계열사가 다음 타깃이 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이와 별도로 그룹의 핵심인 이마트는 지난달 희망퇴직 신청 접수를 시작으로 이미 인적 구조의 ‘다운사이징’ 작업에 들어갔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앞으로도 전통적인 연말 정기 인사를 벗어나 내부적으로 마련한 핵심성과지표(KPI)를 토대로 기대 실적에 미치지 못하거나 경영 성과가 저조한 CEO와 임원진을 수시로 평가해 엄정한 인사를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