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관련된 모든 것을 수집하는 산(山)사람이 있다.
경기 의정부 신곡동의 산악인 안일수(69)씨 집은 산으로 가득 찬 작은 산악박물관이다. 방 2칸과 거실 한쪽 벽면은 용도에 따라 나눈 각종 등산장비와 종류별, 연도별로 정리한 산서(山書) 수천권 등 산 관련 소장품 1만여점으로 빼곡하다. 우리나라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77에베레스트 원정대 관련 물품 15점 등 등산장비 2000여점을 비롯해 △해외등반보고서 176권 산악단체역사편찬서 91권, 산악단체 각종 연보 200권, 단행본과 월간지 3500권을 포함한 산악도서 4000여권 △등산화 △각종 휘장 △산이 그려진 지폐 등 수집품은 산에 대한 안씨의 사랑과 열정을 보여준다. 가히 ‘안일수컬렉션’이라 불릴 만하다.
‘산악박물관장’ 안씨의 산행은 1973년 친구 따라 도봉산 선인봉의 허리길을 오른 것이 시작이었다. 설악산 울산바위 리지(ridge·암벽 등반에서 소규모 바위능선을 가리키는 말)를 개척 등반한 열혈 등반가로서 누구보다 열심히 산에 오르면서 산악계에 도움이 되고자 록파티산악회, 한국산서회, 서울시산악연맹 등 산과 관련된 다양한 단체와 모임에서 활동을 했다.
산과 관련한 물품을 수집한 것은 40년 전부터다.
“대부분 사람이 산에서 애지중지 아껴 쓴 장비를 귀가해선 내팽개치죠. 저는 산에서 과감하게 사용한 뒤 집에 가져와 꼼꼼히 제대로 관리합니다. 이런 나를 눈여겨본 한 선배가 장비를 기증했습니다. 그때부터 장비를 관리하며 수집하기 시작했죠.”
1977년 고(故) 고상돈(1948∼1979) 대원 등이 한국 최초로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에 올랐다. 77에베레스트 원정대 관련 물품은 당시 대원이었던 산 선배 김병준 대원이 기증했다. 우리나라에 몇 점 남아 있지 않아 가치를 높게 인정받는다고 한다.
안씨는 빙설벽을 등반할 때 쓰는 피켈(pickel:얼음을 찍을 때 쓰는 T자 모양의 뾰족한 도구)과 아이스해머(ice hammer:한쪽의 타격면은 망치처럼 뭉뚝하고 다른 한쪽 면은 뾰족한 도구), 아이스바일(eisbeil: 상체는 아이스해머와 같고, 하체는 피켈처럼 뽀족한 도구) 50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피켈에 애착이 있다. 모두 등반의 역사와 사용자의 사연이 가득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안씨가 소장 중인 산 관련 책은 동네 도서관 수준을 뛰어넘는다. 산악박물관장이자 도서관장인 셈이다. 처음에는 산악인의 산행기록과 철학이 담긴 산서를 조금씩 모으다가 한국산서회에서 발행하는 연보에 20년 동안 국내 신간 산서를 소개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고 한다.
“단행본은 비교적 구하기 쉽지만 해외등반보고서, 산악단체역사편찬서는 소량으로 발행해 특히 구하기 힘듭니다. 이런 책들은 발행 소식을 들으면 직접 연락해 얻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해외등반보고서, 역사편찬서, 기술서, 안내서, 논문 등 국내에서 발행한 거의 모든 산서를 가지고 있어요. 등반 논문을 준비하는 후배들이나 산악단체에서 역사편찬서를 쓰기 위해 이곳에 와서 소장 산서를 참고자료로 활용합니다. 산악문화 발전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니 뿌듯하죠.”
산이 도안된 화폐도 수집하고 있다. 국내에서 산이 도안된 지폐를 수집하는 사람은 안씨가 유일하다. 전 세계 200여개 나라에서 발행된 지폐 중 산이 도안된 40개국 60여종의 지폐를 가지고 있다. 현존하는 산도안 지폐의 85% 정도다.
“북악산이 도안된 우리나라 옛날 백원 지폐와 백두산, 금강산이 그려진 북한 지폐는 희귀품입니다. 에베레스트를 세계 최초로 등반한 뉴질랜드 산악인 에드먼드 힐러리가 그려진 5센트 지폐에도 산 그림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산이 에베레스트라고 소개했는데, 공부를 해보니 에베레스트가 아니고 뉴질랜드의 쿡산이라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지폐에 있는 산 중에는 현재 없어진 산도 있어요.” 안씨가 지폐 속의 산과 관련한 해박한 지식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안씨는 “힘들고 보상도 없는 일이지만 누군가는 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산서와 장비를 보물보다 귀하게 여기며 지난 40년간 수집의 길을 묵묵히 걸어왔다”며 “개인박물관을 꿈꿔오다 서울시산악연맹에서 추진 중인 산악박물관에 소장품 전부를 기증할 생각”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