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 후 ‘잊히겠다’던 공언은 사라지고 사실상 더불어민주당의 국회의원 총선거 지원군으로 본격 등판한 문재인 전 대통령의 최근 행보가 국민들에 대한 책임의식에서 비롯했다는 취지로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4일 분석했다. ‘칠십 평생 이렇게 못하는 정부는 처음’이라는 문 전 대통령의 비판에 “우리가 경험한 최악의 정부는 바로 문재인 정부”라던 국민의힘의 반박을 임 전 실장이 대신 막아선 것으로도 보인다.
대표적인 ‘친문(친문재인)’계 인사인 임 전 실장은 이날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문재인 전 대통령께서 결과적으로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는 건 맞다”며 “엊그제 발언하신 것을 보면 민주당 지지를 넘어서 모든 야권들이 힘을 모아 이 정부에 경종을 울려달라는 표현을 했다”고 되짚었다. 이어 “모두가 힘을 모아서 국정기조 전환을 위해 윤석열 정부에 경고하고 심판해달라는 메시지”라며 “저는 문재인 전 대통령께서 무너져가는 외교나 정치, 특히 경제에 대해 책임감 같은 걸 느끼시는 거고 오히려 그렇게 목소리를 내는 것이 국민들에 대한 당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하셨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앞서 문 전 대통령은 지난 2일 울산 동구에 출마한 김태선 민주당 후보를 만나 인사를 나눈 후, 지역 유권자들과 차례로 악수하거나 사진을 찍는 등 사실상의 지원 유세를 펼쳤다. 울산 방문 이유를 묻는 기자들에게는 “이번 총선은 대한민국의 운명을 좌우하는 너무나 중요한 선거”라며 “특별한 연고가 있는 지역이나 후보를 찾아 ‘조용히 응원’을 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조용한 응원’이라는 표현과 달리 같은 날 오후 울산 중구 출마자인 오상택 민주당 후보를 격려하는 자리에서 문 전 대통령은 “칠십 평생 살면서 여러 정부를 경험해봤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못하는 정부는 처음 본다”며 “우리 정치가 너무 황폐해졌다. 막말과 독한 말이 난무하는 저질의 정치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날을 세웠다. 하루 앞선 지난 1일에도 이재영 민주당 경남 양산갑 후보와 함께 양산 물금읍의 벚꽃길을 걸으면서 “칠십 평생 이렇게 못하는 정부는 처음 본 것 같다”며 “정말 무지하고 무능하고 무도하다”고 말했던 것과 같은 맥락의 윤석열 정부 직격이다.
윤석열 정부를 정면으로 비판하면서도, 문 전 대통령은 ‘이번 총선에서 어떤 역할을 하려고 생각하나’라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거듭 “특별한 연고가 있는 지역과 후보를 찾아서 ‘조용히 응원’하고 격려하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하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은 문 전 대통령의 행보에 같은 날 세종 유세에서 “우리가 경험한 최악의 정부는 바로 문재인 정부”라며 맞받은 후, “문 전 대통령이 ‘70년 살았지만 이런 정부는 못 봤다’고 했는데 (문 전 대통령) 기억력이 나쁜 것 같다”고 꼬집었다.
특히 “문 전 대통령이 잘 나왔다고 생각한다”며 “우리가 잊어버리고 있던 최악의 정부, 문재인 정부의 시절을 여러분이 기억할 수 있게 해준 것”이라고 도리어 문 전 대통령의 등판을 고마워했다. 한 비대위원장은 충남 천안 유세에서도 “부동산이 폭등하고 살기 힘들었던 것 기억하지 않나”라며 “마지막에 그런 사람이 이렇게 등장해 ‘70년 만에 처음 본다’니 저는 정말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비례대표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선대위의 김시관 대변인도 논평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5년’의 세상을 살아온 수많은 국민은 문 전 대통령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전직 대통령은 지지자가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대표하는 지도자여야 한다. 정파와 진영을 대표하는 순간, 국론이 분열되고 사회적 갈등을 초래한다”고 비난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부동산 가격 폭등 등을 지적한 여권의 반응에 임 전 실장은 라디오에서 “물론 문재인 정부에서 부동산 문제로 국민들이 많이 고통 받으셨고, 코로나19 기간이 워낙 길어져서 힘드신 것도 사실이었다”면서도 “지금의 위기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끝까지 문 전 대통령을 엄호했다.
이와 함께 문 전 대통령의 등판에 ‘왜 승리에 숟가락을 얹느냐’거나 ‘민주당 몰빵을 외쳐야 하는데 왜 다른 당을 언급하느냐’ 등 일부 민주당 지지자들의 비판에는 “민주당 적극 지지자들의 하소연일 수 있다”면서도 “훨씬 책임 있는 이야기를 하신 것이고, 문재인 전 대통령께서는 민주당의 승리도 중요하지만 1차적으로는 민주당을 중심으로 누구라도 힘을 모아 정권심판의 흐름을 이어가야 한다는 차원에서 훨씬 더 고민이 깊으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