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짜고짜 “인테리어 공사 사인 좀”… 서명 꼭 해줘야 하나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밤에 찾아와 무작정 요구…“배려 없어 화나”
“소음 싫어” 서명 거부…받는사람도 힘들다
공사 동의서 유명무실? “없는 것보단 낫다”
“더불어 사는 곳…양보·배려하는 자세 필요”

#1. 서울 중구의 아파트에서 돌쟁이 아기를 키우고 있는 A씨는 최근 아랫집 인테리어 공사 소음에 고통을 겪었다. 어느 날 아기를 재우고 있던 늦은 밤, 아랫집 주인이 초인종을 누르고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인테리어 공사를 해야 하니 동의서에 사인해달라”고 요구했다. 다소 뻔뻔한 태도에 서명해주고 싶지 않았지만, 앞으로 이웃이 될 입장이라 안 할 수 없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드릴로 깨부수는 소리가 계속됐다. 아기가 있어 더욱 견디기 힘들었다. A씨가 아랫집 주인에게 연락해 “소음이 큰 공사가 있는 날은 미리 알려달라”고 말하자 “공사하면 당연히 시끄러운데 어쩌라는 말이냐”며 “동의 서명도 했으면서 왜 항의하냐. 기분 나쁘다”고 받아쳤다. B씨는 “공사는 끝났지만, 본인 입장만 주장하는 배려 없는 사람이 아랫집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부딪치지 않으려 조심하면서도 스트레스받는다”고 말했다.

 

#2. 경기 성남의 한 아파트에 사는 B씨는 최근 엘리베이터 안에서 불쾌한 일을 겪었다. 처음 본 여성이 다짜고짜 전 세대 서명란이 있는 인테리어 공사 동의서를 들이밀며 “여기 14층 공사하니까 사인 좀 해줘요”라고 말했다. 공사 일정을 설명하며 양해를 구하는 경우 흔쾌히 서명을 해줬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예의 없는 태도에 기분이 상한 B씨가 “동의를 꼭 해드려야 하는 건 아니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여성은 동의서를 거두며 B씨를 위아래로 흘겨보고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얼마 뒤 인테리어 공사가 시작됐다. B씨는 “그런 식으로 주민 동의 서명을 다 받았을 것 같지 않은데 공사는 그대로 진행됐다”면서 “이웃이 동의하지 않아도 공사할 수 있는데, 뭐하러 서명을 받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서울의 한 아파트 인테리어 공사 동의서.  업체블로그 캡처

수년 전부터 아파트 인테리어 공사를 할 때 이웃들로부터 동의를 받는 관례가 확산했다. 인테리어 공사에 따른 소음 피해와 그로 인한 갈등을 줄이기 위해 각 아파트 관리사무소가 자체 규약을 두어 운영하는 것이다. 집주인은 이웃에게 양해를 구하며 소음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이웃들은 동의서에 서명함으로써 이를 양해하겠다는 뜻을 밝히는 합의 같은 것이다.

 

관리사무소에서 집주인에게 요구하는 인테리어 공사 동의서 통과 기준은 아파트마다 다르다. 어떤 곳은 동 주민 50% 이상만 동의를 받으면 되지만, 어떤 곳은 3분의 2 이상, 80% 이상 등으로 기준이 높다. 여기에 보통 ‘윗집, 옆집, 아랫집 서명은 필수’ 혹은 ‘위·아래 3개 층 서명은 필수’ 등 소음 피해가 더 큰 이웃의 서명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기도 한다. 동의서를 받지 않고 인테리어 일정 공지만 하도록 하는 아파트도 있다. 

 

1일 아파트관리 관계자들에 따르면 실제로 이 규정에 맞춰 완벽하게 동의를 받기는 쉽지 않다. 아예 문을 열어주지 않거나, 시끄러운 게 싫다며 서명을 해주지 않는 입주민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집주인이 일일이 세대를 방문해 사정을 설명하면 동의율을 높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마찰이 생겨 이사 전부터 후까지 쭉 갈등을 겪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인테리어 동의서는 각 아파트 자체 규약에 따라 받는 것일 뿐 법적 효력은 없다. 따라서 동의서를 받지 않아도 공사는 진행할 수 있다.

 

수도권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붙은 인테리어 공사 안내문.  독자 제공

수도권 한 아파트의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최대한 받아오라고 말씀드리는데 3분의 2 이상 동의서 받기를 어려워하시더라. 동의를 다 안 받고 공사를 하겠다고 해도 관리사무소가 막을 방법은 없다”면서 “가까운 이웃 세대로부터는 꼭 동의를 받고, 전체 30% 이상 동의하면 그냥 진행하시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사 동의서에는 공사 기간, 공사 시간, 소음이 특히 많이 발생하는 일자, 인테리어 담당자 연락처 등 정보가 담긴다. 업체가 공지한 공사 시간이나 기간을 지키지 않을 때 갈등이 가장 많이 발생한다. 입주민들은 “약속이 다르지 않냐”고 항의하고, 집주인들은 “공사하다 보면 일정을 지키기 어려울 때가 있는데 이해해달라”고 항변한다.

 

약속한 내용을 잘 지킨다고 갈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웃은 “나는 동의하지 않았는데 왜 공사를 하냐”고 하고, 동의한 이웃은 “이렇게 시끄러울 줄 몰랐다”고 한다. 집주인들에게도 고역이다.

 

지난해 서울 성북구에서 아파트를 장만해 인테리어 공사를 진행한 이모(42)씨는 “이웃들에게 핀잔을 들어가며 동의서를 받았는데 바로 윗집이 끝까지 동의해주지 않았다. 관리사무소에 얘기하고 그냥 공사를 진행했는데, 윗집 아주머니가 공사 기간 내내 관리사무소와 인테리어 현장 소장에게 줄기차게 항의했다”면서 “처음엔 죄송한 마음이 있었지만, 불법도 아니고 내 재산권을 행사하는 일인데 그렇게까지 심하게 반대하는 것에 화가나 나중에는 나도 언성을 높이게 되더라”고 말했다.

 

이처럼 문제가 끊이지 않자 인테리어 공사 동의서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아파트 주민들이 늘고 있다. 동의서를 받을 필요도, 서명해줄 필요도 없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래도 인테리어 동의서 규약은 없는 것보단 있는 게 낫다”고 입을 모은다.

 

차상곤 주거문화개선연구소장은 “예고 없이 공사 소음을 내는 것과 미리 양해를 구하고 소음을 내는 것은 피해를 보는 입장에서 아주 다르다”면서 “공사하는 측은 약속을 최대한 지키려 노력하고, 이웃들은 사정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효과가 없지는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혹시 모를 법적 다툼을 대비해서도 인테리어 동의서는 받는 것이 좋다. 법무법인 동인 최종모 변호사는 “공사 소음 문제가 법정 다툼으로 가는 경우 이웃이 실제 손해 입은 사실이 입증돼야 정신적 고통에 대한 손해배상이 인정된다”면서 “아파트관리 규약을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동의서를 받았다면 ‘소음 피해 최소화를 위해 노력했다’고 면책을 주장할 수 있고, 이것이 인정되면 손해배상 액수를 정하는 데 참작요소가 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인테리어 공사 소음 문제로 소송을 벌이는 것은 피하는 것이 최선이다. 소를 제기하는 쪽과 당하는 쪽 모두 실익이 없기 때문이다.

 

최 변호사는 “소음, 진동, 먼지 등이 심한 경우 그 피해 내용을 다 입증할 수 있다면 손해배상을 청구해 법원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 하지만 손해배상 액수가 (가족 구성원 수에 따라 달라지긴 하지만) 많아야 몇백만원이기 때문에 들이는 노력과 시간, 비용을 생각하면 손해”라면서 “공사에 동의했다면 그 기간은 참아주고, 불쾌한 일이 있더라도 ‘운이 나빴다’고 생각하고 넘어가는 것이 사실은 가장 좋다”고 조언했다.

 

차상곤 소장은 “신고 내용을 어겨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가장 많기 때문에 인테리어업체들이 아파트관리 규약을 잘 지키고 공사 기간과 시간을 잘 지키도록 신경을 많이 써야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동의서 받는 일도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성의있게 사정을 설명하면 이웃들도 웬만하면 이해해준다”면서 “더불어 사는 아파트에서는 나도 상대의 입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