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수장된 그날의 진실… 기억의 힘은 빛을 잃지 않았다

책임을 묻다

침몰중인 진실을 끌어올리기 위해
유가족·변호사 등 10년간 사건 분석
책임이 실종된 현실 담담히 그려내

기억의 공간에서 너를 그린다

거리의 투사로… 봉사가… 활동가로
4·16 이후 삶이 바뀐 피해자와 유가족
진실에 다가서려는 기억의 연대 조명

책임을 묻다/김광배 외 7인/굿플러스북/2만2000원

 

기억의 공간에서 너를 그린다/박내현 외 9인/한겨레출판/2만2000원

 

“아저씨, 140도요!” 4월16일 오전 8시46분, 전남 진도군 맹골수도를 거의 빠져나와 병풍도와 관매도 사이의 해역을 19노트의 속력으로 항해하고 있던 세월호 조타실에서 삼등 항해사 박한결이 조타수 조준기에게 변침을 지시했다. 박한결은 겨우 4개월 전에 청해진해운에 입사한 선원. “140도, 써!” 조준기는 경쾌하게 답했다. 타를 오른쪽으로 5도 정도 돌렸다가 중립인 0도로 되돌렸다. 이를 2, 3회 반복했다.

 

2분 뒤, 자이로컴퍼스의 눈금이 140도에 멈추지 않고 계속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141도, 142도, 143도…. “어어, 안돼, 안돼, 안돼!” 조준기가 소리쳤다. 조준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세월호의 뱃머리가 오른쪽으로 빠르게 돌아갔고, 동시에 왼쪽으로 기울어졌다. 세월호 선수에 쌓아둔 컨테이너들이 쏟아져 내렸다. “아저씨, 반대로요! 반대로!” 박한결이 큰소리로 외쳤다. 조준기는 타를 조정하는 핸들을 왼쪽으로 돌렸지만 세월호는 계속 오른쪽으로만 돌아갔다.

오전 8시49분, 세월호가 급격히 기울었다. 얼마 뒤에는 2층 C갑판에 있는 차량 블랙박스에서 ‘쾅’하는 굉음이 들려왔다. 곧이어 C갑판에 실린 차량이 대규모로 이동했다. 세월호는 금세 51도까지 기울었다. 배가 기울자 박한결은 선내 전화로 이준석 선장에게 알리려다가 왼쪽으로 미끄러졌다. 조타수 조준기도 오른손으로 조타기 핸들을 잡고 왼손으로 조타대 옆면을 잡은 채 버티고 있었다.



이등항해사 김영호가 가장 먼저 조타실로 뛰어 들어왔다. 김영호는 해수 유입이나 방출을 통해 선박의 기울임을 보정하는 힐링버튼을 눌렀지만 작동되지 않았다. 곧이어 선장 이준석, 조타수 오용석과 박경남, 일등항해사 강원식, 신정훈 등도 들어왔다. “힐링 펌프는 작동하지 않습니다!” 상황을 묻는 이준석 선장의 말에 기관장 박기호가 알려왔다. “발전기가 나갔습니다!” 박기호의 말에 조타실에 있던 선장과 선원들은 모두 공포를 느꼈다. 발전기가 나갔고 휠링 펌프로 바로 세울 수 없다면 기울어진 세월호는 곧 침몰할 수밖에 없었다.

“살려주세요!” 오전 8시52분, 전남소방본부 119상황실에 전화가 걸려왔다. 상황실 직원이 전화기를 들자 수화기 너머에선 학생의 외침이 들려왔다. 세월호 4층 좌현 객실에 있던 단원고 학생 최덕하군이었다. 최군이 119에 전화를 걸어 처음 한 말은 살려주세요, 였다. “여보세요, 네, 여기 119상황실입니다.” 상황실 직원이 전화를 받았다. “여기 배인데, 여기 배가 침몰되어 가지고….”

여느 봄날과 다름없었던 2014년 4월16일, 전남 진도군 조도면 부근 병풍도 북쪽 20㎞ 인근 해상에서 승객 476명이 탑승한 세월호가 침몰했다. 빛나라, 도언, 성호, 지성, 수인, 미지, 영만, 순범, 윤민, 동수 등을 비롯해 모두 304명이 사망했다.

 

김광배 외 7인/굿플러스북/2만2000원

‘준형 아빠’ 장훈 416안전사회연구소장과 오지원 변호사를 비롯한 유가족과 변호사 등 8명의 저자들은 ‘책임을 묻다’에서 2014년 세월호 참사부터 시작해 ‘침몰한 진실’을 인양하기 위해서 지난 10년간 한국 사회가 걸어온 길을 주제별, 시계열로 정리했다. 일종의 ‘세월호 참사 10주기 보고서’ 성격이 짙다. 저자들은 시민들이 정부와 관계 기관에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물었지만 국가는 그 책임을 ‘묻었다’는 문제의식에 따라 직접 수천 장의 판결문과 자료를 읽고 이를 바탕으로 10년 동안 밝혀진 것들이 무엇인지,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를 직접 정리하고 분석했다.

이를 위해 참사 책임자들에 대한 각종 판결문을 함께 읽었고, ‘세월호 선체 조사위원회’와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보고서들을 검토했다. 특히 세월호 참사 당일을 재구성하기 위해서 선내 CCTV를 보고 또 봤고, 목포신항으로 달려가 인양된 세월호 선체 안에서 아이들이 걷던 복도와 계단을 걸었으며, 각종 보고서에 기재된 시간대별 공간별 상황을 크로스체크했다. 이렇게 3년의 노력 끝에 책을 펴냈다.

책은 세월호 참사를 사건 발생 상황, 해경의 재난 및 구조 대응, 컨트롤타워인 청와대의 대응을 차례로 분석한 뒤 피해자를 사찰하고 감시한 기무사와 국정원, 진상 규명을 위해 설립된 세월호 특조위의 노력과 좌절, 두 차례 이뤄진 검찰의 수사와 기소, 선사와 선원, 해경, 청와대 고위 관계자들에 대한 법원 판결을 차근차근 파고든다.

 

박내현 외 9인/한겨레출판/2만2000원

한편 박내현 노동인권 활동가를 비롯해 10명의 저자가 공동 집필한 ‘기억의 공간에서 너를 그린다’는 참사 10년을 맞아서 기억의 공간을 지키고 있는 피해자와 연대자를 조명한 책이다. 책은 제1부에서 전국의 주요 기억 장소, 지역 공간을 찾아가 10년간 그곳을 지켜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목포신항에서 세월호 선체를 지키는 김애숙과 정성욱씨, 안산 ‘기억과 약속의 길’의 고명선씨, 세월호 팽목기억관의 정기열씨 등등. 2부에선 거리의 투사가 되기도 하고, 다양한 분야의 활동가나 봉사자로 변신한 참사의 피해자들의 사연을 전한다. 단원고 생존자로 당시의 기억을 기록한 유가영씨, 416기억저장소장 이지성씨, 시민들에게 받은 위로를 봉사로 돌려주겠다며 416봉사단 결성해 봉사를 이어온 은정 엄마 박정화씨….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된 뒤 21일 만인 2017년 3월31일, 진도 앞바다에 가라앉아 있던 세월호가 화이트마린호에 실려 왼쪽으로 누운 모습으로 마침내 인양됐다. 이제는 바로 선 세월호 선체는 녹이 슨 채 항만 끄트머리에 위태롭게 머물고 있다. “선체와 함께 인양되리라 기대했던 진실과 진상은 인양되지 않은 채, 관련자는 무죄를 받고 책임자는 풀려나기도 하는 2024년. 세월호는 아직, 여기에 있다.”

세월호가 그 누추한 모습을 드러내자,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은 다시 통곡했다. 배는 뭍으로 돌아왔지만 304명의 소중한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가족 속에서 호성 엄마 역시 세월호를 보고 소리쳤다. “가만두지 않을 거야.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