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난치성질환 환자는 매일매일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상황이라 빨리 전공의 사태가 해결됐으면 좋겠습니다.”
딸 예지(6)가 희귀·난치성 질환을 앓고 있는 최지민(가명·여)씨는 5일 정부와 전공의들이 의대 증원을 둘러싸고 한 달 보름간 갈등을 빚는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며칠 전 새벽 딸이 경기를 일으켰지만 병원에 가는 건 생각도 하지 못했다. 최씨는 “딸은 희귀 유전질환이라서 웬만한 장애는 다 갖고 있지만 제주도는 병원 환경이 열악해 어려움이 있다”며 “특히 소아신경과가 있는 종합병원이 없고 그나마 일반 병원조차 개원 전이다 보니 문제가 생기면 서울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을 이어갔다. 그는 “며칠 전에도 제주에 종합병원이 있었으면 딸을 안고 바로 달려가 진찰받았겠지만 그렇지 못해서 불안에 떨며 밤을 지샜다”며 “문제는 서울의 상급종합병원에 간다고 해도 당장 진찰을 받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라고 하소연했다. 전공의 집단이탈 이후 수술은 물론 외래진료 등이 모두 미뤄진 여파다.
딸의 진료를 위해 서울에 가는 건 평소에도 최씨 가족에겐 크나큰 부담이다. 최씨는 “뇌전증이 심할 경우 비행기를 탈 때에도 누워서 이동해야 하고 소아신경과 의사가 동행해야 한다”며 “딸이 그 정도는 아니지만 비행기 안에서 남편과 꼭 붙들고 달래면서 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씨 가족의 서울행은 험난하다. 제주 집에서 나와 비행기를 타고 서울 김포공항으로 가서 상급종합병원까지 이동하는 데에만 5∼6시간이 걸린다. 진료 대기 등을 고려하면 하루를 꼬박 써야 한다.
여기다 중복장애라서 한 번 서울행을 결심하면 3∼4개 과를 돌며 그간 문제가 된 듯한 사항을 모두 점검하곤 했다. 숙박이 힘들면 새벽 첫 비행기를 타고 서울에 가서 마지막 밤 비행기를 타고 겨우 제주로 돌아오는 게 일상이다.
그런데 전공의 집단이탈 사태가 불거지고 이런 험난하고 고단한 서울행 진료조차 힘들게 됐다. 최씨는 “제주에도 상급종합병원이 있었으면 좋겠지만 지금은 서울 진료만이라도 제때 받을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최씨는 윤석열 대통령과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이 전날 만났다는 데 대해선 “대통령과 잘 이야기하고 잘 조율되길 바란다”고 했다. 최씨는 그러면서도 “우리 같은 희귀·난치성질환 환자 가족들에게 2000명이란 숫자는 아무 의미가 없다”며 “그저 내 가족이 치료받을 수 있는 의사가 곁에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
한편 ‘샤르코마리투스’라는 희귀질환으로 투병 중인 김재학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회장은 이날 ‘빅5’ 병원장들에게 보내는 공개 편지에서 “우리 희귀·난치성질환 환자들은 치료 시기를 놓치면 생명이 위험해지거나 합병증, 2차 질병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며 “희귀·난치성질환은 필수의료 중에서 필수의료이므로 이를 책임지고 있는 희귀질환 진료 교수들이 자리를 떠나지 않도록 붙잡아 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희귀질환 환자들은 전공의보다 교수님을 통해 진료나 수술을 받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에 전공의 파업으로 인한 피해는 적었지만 교수 사직이 잇달아 발생하면서 환자와 가족들의 두려움과 불안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희귀질환 환자들은 치료 시기를 놓치는 순간 인생에 돌이킬 수 없는 장애가 생기거나 생명을 잃게 된다”고 교수들이 떠나지 않도록 설득해 달라고 거듭 강조했다.
실제 전공의 집단이탈 이후 사직의사를 밝힌 의대 교수들이 비상대책위원회를 통해 모았던 사직서를 대학에 제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