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대 국회의원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5일, 전국 각지의 투표소엔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려는 유권자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지팡이를 짚거나 가족의 부축을 받으며 온 어르신, 휠체어 탄 장애인, 유모차를 끌고 온 여성, 제복·군복을 입은 이들도 눈에 띄었다. 특히 출근시간대와 점심시간엔 짬을 내 투표하려는 사람이 몰리면서 줄이 길어졌다. 선거 관련 사건사고도 잇따랐다.
이날 오전 9시30분쯤 찾은 서울 강서구 화곡1동주민센터에선 투표에 참여하려는 시민들의 행렬이 센터 밖까지 늘어는 등 높은 관심도를 체감케 했다. 60대 이상 어르신이 대다수였지만, 아이 손을 잡고 온 젊은 부부나 대학생으로 보이는 이들도 섞여 있었다. 대학생 이지은(22)씨는 “선거 당일(4월10일)에는 놀러 갈 것”이라며 “투표권을 포기할 순 없어서 사전투표를 하러 왔다”고 말했다. 김현정(62)씨는 “서둘러 투표하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첫날부터 왔다”고 웃어보였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 분당동행정복지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를 방문한 박모(42)씨는 “본투표일에는 사람이 많이 몰릴 것 같아서 사전투표를 하러 왔다”고 했다. 부산 연제구 연산2동 사전투표소에서 만난 20대 여성은 “이번이 생애 첫 투표“라며 “최근 의사 집단행동 같은 시끄러운 일이 많았는데, 앞으로 4년 간 국민들을 편안하게 만들어줄 후보를 뽑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천국제공항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선 여행용 캐리어를 끌고 줄을 서는 여행객들을 볼 수 있었다.
서해 최북단 섬인 백령도에서도 주민과 해병대 장병들이 줄 지어 투표권을 행사했다. 군부대가 많은 강원지역에서도 사전투표 열기가 뜨거웠다. 육군 2군단 장병들은 군 수송차량을 타고 춘천시 신북읍행정복지센터 사전투표소를 찾았다. 김모(22) 병장은 “곧 전역해 사회인이 되는 만큼 이번 선거에 특히 관심이 많다”며 “선·후임과 함께 투표한 게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했다.
전남 나주혁신도시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2층에 마련된 투표소에선 60대 시각장애인이 공정선거지원단의 도움을 받아 사전투표에 참여했다. 비례대표 투표의 경우 점자 투표보조용구를 이용했고, 지역구 투표는 지원단 직원이 불러주는 후보자 이름, 기호, 정당명을 듣고 원하는 후보자를 밝히면 지원단이 대신 도장을 찍어주는 식으로 진행됐다. 경북 포항시의 최고령자인 김상우(101)씨는 딸의 부축을 받으며 투표장을 찾아 투표한 뒤 “큰 보람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사건사고도 속출했다. 이날 오전 6시쯤 경기 평택시의 한 사전투표소에서 술에 취해 “국민의힘을 뽑아달라”고 외친 50대가 경찰 조사를 받았다. 울산에선 한 아파트 펜스에 붙어있던 선거 벽보가 통째로 사라지고, 일부 후보의 벽보가 훼손되는 일이 있었다. 공직선거법상 정당한 사유 없이 선거 벽보, 현수막 등을 훼손, 철거하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4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부산 부산진구 개금3동행정복지센터에서는 투표용지를 찢는 등 행패를 부린 50대 남성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체포돼 조사를 받았다. 수영구 민락동행정복지센터 사전투표소에서도 한 80대 남성이 “기표하지 않고 투표함에 넣었다”며 투표용지를 꺼내달라고 난동을 피워 선거사무원들에게 제지당했다. 강원 춘천시의 한 사전투표소에선 먼저 투표를 마친 남편이 아내가 투표 중인 기표소에 들어가 “이걸 찍어라”라는 등 대화를 주고받았다가 아내의 투표용지 2장 모두 무효표 처리됐다. 광주 광산구에선 투표지 촬영을 시도했다 적발된 50대가 주의를 받는 일도 있었다.
대전 중구에서는 사전투표소 기표소 안에 도장이 찍혀 있지 않은 비례대표 투표용지가 놓여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투표관리관은 먼저 투표한 유권자가 용지를 기표소에 놓고 간 것으로 보고 공개된 투표용지 봉투에 담아 별도 기록을 남겼다. 해당 투표지는 무효표로 처리된다.
총선 사전투표소 등 전국 41곳에 몰래 침입해 불법카메라를 설치한 유튜버는 검찰에 넘겨졌다. 인천 논현경찰서는 건조물 침입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한 40대 A씨를 이날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A씨가 침입한 정황을 확인한 장소 중 36곳에서 정수기 옆 등지에 설치된 카메라를 발견해 회수했다. 나머지 5곳 가운데 3곳에선 설치됐던 카메라가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고 경찰은 전했다. 다른 2곳은 A씨가 설치를 시도하다가 스스로 회수했다고 한다.
이날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각 시·군·구선관위에 ‘대파 금지령’을 내린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고물가의 상징이 된 대파를 갖고 오는 것을 투표소에서 특정 정당·후보자에 항의하는 정치 행위로 보고, ‘대파를 소지한 선거인에게는 사전투표소 밖 적당한 장소에 대파를 보관한 뒤 투표소에 출입하도록 안내하라’는 지침을 전달한 것이다. 야권은 반발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이날 충남 보령시에서 지지 유세 중 “쪽파는 되느냐, 디올백은 괜찮나”라고 비꼬았다.
한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날 사전투표 종료 후 관외 사전투표지가 우편으로 이송되는 서울 중구 서울중앙우체국을 방문해 이송 현장을 점검했다. 그동안 관외 사전투표지 배송은 우정사업본부가 단독으로 진행해 국민적 우려가 많았으나, 이번 선거부터는 경찰이 우편 운송차량에 동승하는 등 관리 절차를 한층 강화했다. 이 장관은 안전한 투표지 이송 관리를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