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의 한 병원 여자 샤워실에 70대 남성이 침입했다는 신고가 접수돼 경찰이 출동하는 일이 발생했다. 피해 여성은 “추운 샤워실에서 40분간 벌벌 떨어야했다”며 병원 측 보상과 남성의 처벌을 요구했다.
8일 서울 남대문경찰서 등에 따르면 지난달 14일 서울 중구의 한 대형 한방병원 여자 샤워실에 남성 노인이 무단 침입했다는 112 신고가 접수됐다. 현장으로 출동한 경찰관들은 폐쇄회로(CC)TV 분석 등을 통해 5분 간격으로 30대 여성 A씨와 70대 남성 B씨가 연달아 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했다.
다만 경찰 신고가 당일이 아닌 며칠 후 접수돼 현행범 체포는 이뤄지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현장에서 사실관계 파악은 했으나 당일 발생한 사건이 아니었다. CCTV 확인도 했지만 구체적으로 확인이 안 된 부분도 있었다”며 “여성 신고자에게 고소 절차를 안내한 상태”라고 말했다.
앞서 신고 사흘 전인 지난달 11일 오후 8시55분쯤 A씨는 여자 샤워실 첫 번째 칸에서 샤워를 하던 중 세 번째 칸으로 누군가 들어가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A씨는 남자 목소리로 추정되는 소리가 들리자 기겁했다. A씨는 “제 칸의 문을 살짝 열고 옆옆 칸을 봤는데 여자 키가 아니었다. 잘못 들어오신 건가 싶어 헛기침 소리도 내보았지만 (B씨가) 아랑곳하지 않고 샤워를 이어갔다”며 “너무 무서워 문고리를 붙잡고 40분간을 벌벌 떨면서 갇혀있었다”고 토로했다.
B씨는 “여자 샤워실과 남자 샤워실이 붙어있어 실수로 잘못 들어갔다”고 해명했다고 한다. B씨는 “나이가 몇 살인데 일부러 그랬겠냐”며 “(사건) 이틀 전 입원해 병원 구조를 몰랐다. 평소 쓰는 안경이 아닌 다른 안경을 가져와 눈이 침침했다. 미안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병원 측에서 사건 당일 CCTV를 바로 확인해주지 않아 신고가 늦어졌다며 병원 측 과실을 주장하고 있다. 사건 당일에도 샤워실 지척에 간호사 데스크가 있었으나 B씨의 출입을 막지 못했다며 관리 소홀 문제도 지적했다. A씨는 “이 사건으로 극심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고의성이 없어보인다며 체포를 하지 않은 것도 이해가 안 간다”면서 B씨 처벌과 함께 병원 측에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병원 측은 “샤워실 외부에 성별 구분 표시를 명확히 해놓았고, 개별 샤워부스도 불투명 시트 등으로 가려져 있어 안이 보일 수 없는 구조”라며 “여성 환자분께 도의적인 차원에서 1인실 외에 보상금을 제안했으나 거절하셨다. 남성 환자분의 실수로 비롯된 일인 만큼 이후 경찰 수사에 적극 협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수로 들어가도 처벌 가능할까…“‘고의성 없음’ 입증해야”
타 성별이 이용하는 장소에 들어가는 ‘성적목적 다중이용장소 침입 범죄’는 매년 증가 추세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성폭력처벌법상 성적목적 다중장소 침입 범죄 건수는 2022년 621건으로 2021년 548건 대비 13.8%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당초 관련 법률은 공중화장실이나 공중위생관리법에 따른 목욕장 등에만 적용됐으나 이외 장소에서도 범죄가 늘어남에 따라 상가 화장실 등 다중이용장소도 포함되도록 개정됐다.
실수로 다른 성별 화장실 등에 들어갔다 피의자가 된 사례도 증가하고 있는데, 범죄 목적이 아니더라도 혐의가 인정될 수 있다는 게 법조계 설명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관련 범죄 신고가 급증하면서 억울하게 연루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생리현상이 급해 미처 확인을 못하고 들어갔다 실제 고소를 당했던 사례도 있다”며 “성적 목적의 여부를 가리는 게 관건인데, 성적 욕구를 지니고 고의적으로 침입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CCTV 사각지대 등 증명 자체가 어려운 경우도 있지만 무죄가 판결된 전례도 많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