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2019년생 아이를 키우는 A씨는 요새 아이의 유치원을 옮길지 고민 중이다. 주변 유치원보다 방과후 수업 등이 부실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른바 ‘영어 유치원’이라 불리는 유아 대상 영어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을 볼 때면 불쑥 불안감도 밀려온다.
A씨는 “유치원마다 교육 편차가 큰 것 같아서 더 좋은 기관을 알아봐야 하는 것 아닌가 조바심이 든다”며 “이러다 아이가 학교에 가면 시작부터 뒤처질까봐 걱정된다”고 털어놨다.
학부모들이 유치원·어린이집이 아닌 사교육업체를 선택하는 현상은 사회 전반에 유아 공교육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사교육을 막고, 가계의 교육비 부담을 줄이려면 유아 공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윤지혜 전국국공립유치원노조 위원장은 “만 5세 의무교육이 되면 유아 공교육 출발점을 앞당겨 공교육 질이 강화되고, 유치원과 초등학교 연계가 강화될 것”이라며 “또 학부모의 기관 선택 어려움을 해소하고 유아사교육 부담이 완화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현재 비용 부담이 작은 국공립유치원과 달리 사립 유치원은 수십만원의 추가 수업료 등을 부담하는데, 만 5세 교육이 의무화되면 이런 추가부담 문제도 해소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학부모들도 긍정적이다. 교육부가 전국 학부모 3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22년 유아교육 실태조사’에서 만 5세 의무교육에 대한 찬성도는 4점 만점에 3.32점으로 나왔다.
◆유보통합 계기로 논의 시작돼야
만 5세 교육 의무화 논의는 특히 지금이 적기란 의견이 많다. 과거 유아교육 의무화 이야기가 수차례 나왔으나 좌초된 것은 어린이집과 유치원으로 이원화된 유아교육체계와 교원 양성 체계가 걸림돌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는 두 기관을 통합하는 유보통합을 진행 중이다. 교육부는 올해 보건복지부로부터 어린이집 업무를 넘겨받고, 내년부터 두 기관 통합을 시작한다는 방침이다. 유보통합을 계기로 어린이집·유치원 교원 양성 체계도 통합 정비한다. 만 5세 기관이 일원화되는 것이어서 의무교육으로 가기에 훨씬 수월해진 상황이다. 교육계 관계자는 “최근 출생아가 줄어 과거보다 예산 부담도 덜하다. 교육의 질을 논의할 수 있는 시기”라고 설명했다.
다만 전제되어야 할 것은 국공립 기관 취원율이다. OECD 가입국은 통상 국공립기관에 다니는 유아 비율이 60%를 넘지만, 한국은 지난해 기준 유치원 재원 아동 중 국공립유치원 재원 비율은 29.3%에 그친다. 어린이집도 28.3%다. 경기의 한 유치원 교사는 “사립유치원은 국공립기관만큼 재정지원이 어려운 면이 있다”며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려면 국공립기관 취원율이 크게 올라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현재 사립기관 재원율이 높고 기관마다 질이 천차만별이어서 의무교육을 논하기엔 이른 면이 있다. 논의가 성숙되려면 국공립기관 취원율을 올리고 유보통합으로 교육여건 질이 균질화돼야 한다”며 “우선 국공립 취원율 개선과 유보통합에 집중한 뒤에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의무교육의 의미는 전국 유아교육기관의 질을 균등화한다는 것이다. 교육 질을 균질하게 동반상승시키는 것”이라며 “지금은 지역, 소득수준에 따라 받는 유아교육 질 편차가 크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배 교수는 “유아교육 의무화는 결국 가야 할 길”이라며 “유보통합을 계기로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