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년간 보증금을 못 받아 고생하고 월세로 바꿨습니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 9년 차에 접어든다는 김모(36)씨는 서울 강서구에 있는 보증금 5000만원, 월세 85만원인 전용 33.06㎡ 규모의 빌라에서 살고 있다. 다달이 내는 집세가 낭비라는 생각에 취직 후 줄곧 전세를 고집해온 그였으나, 지난해 2억원의 전세금을 돌려받기 위해 6개월가량 전세보증금반환소송으로 승강이를 벌인 후 새집은 월세로 구했다. “목돈을 날리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느냐”는 의미에서다.
대규모 전세 사기가 속출한 여파로 빌라 거주자 사이에서 월세로 이동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장기간 경기침체에 급여 등을 포함한 가처분소득은 크게 증가하지 않은 상황이라 서민 고통이 커지는 모양새다. 빌라 전세 기피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빌라 수요가 몰리면서 아파트 전셋값은 급상승 중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1일 기준 서울의 전셋값은 46주 연속 오름세를 기록했다. 또 아파트 전세 비중은 2022년 같은 기간 38.8% 대비 5.1%포인트 늘어난 43.9%를 기록했다.
빌라 월세화 및 아파트 전세 비중 증가는 서민 주거비 부담 상승을 초래한다.
통계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가구당(전국·1인이상) 월평균 이자비용은 13만원으로 지난해(9만8700원)보다 31.7%(3만1300원) 급증했다. 이는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2019년 이후 가장 큰 상승 폭이다.
이자비용은 가구가 지출한 월세 등을 보여주는 ‘실제 주거비’(11만1300원)까지 9년 만에 추월했다. 고금리 장기화로 절대 이자비용이 늘어난 가운데 빌라보다 비싼 아파트 전셋값을 부담한 탓이다. 지난해 실제 주거비도 전년보다 8900원(8.6%) 늘면서 2019년 이후 최대 증가 폭을 기록했다.
주거비 증가는 가계의 여윳돈 감소로 이어진다. 2022년 1분기 132만원에 달했던 흑자액(처분가능소득에서 소비지출을 뺀 금액)은 하락세를 거듭해 지난해 2분기 114만원까지 떨어진 후, 지난해 4분기 소폭 상승해 121만원으로 집계됐다. 아울러 지난해 4분기 월세가구의 흑자율(처분가능소득 대비 흑자액)은 20.0%로 2019년 1분기(17.3%) 이후 4년여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정세은 충남대 교수(경제학)는 “섣부른 정부의 개입은 오히려 전·월세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충분한 조사를 통해 어려운 가구를 선별해 일시적인 주거비 지원 및 세액공제 등을 제공해 가계 소비 위축을 완화시키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