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아파트 빌트인 입찰 담합 성행, 고분양가 유발 엄단하라

[세종=뉴시스] 강종민 기자 = 황원철 공정거래위원회 카르텔조사국장이 지난 5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31개 가구 제조·판매업체들이 2012년부터 2022년까지 738건의 특판가구 구매입찰에서 낙찰예정자를 합의하거나 투찰가격을 공유하는 담합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과징금 총 931억 원을 부과한다고 밝히고 있다. 2024.04.07. ppkjm@newsis.com

공정거래위원회가 그제 빌트인 가구 구매 입찰에서 담합 행위를 한 31개 가구 제조·판매업체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931억2000만원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빌트인 가구는 싱크대와 붙박이장처럼 신축 아파트나 오피스텔에 주로 설치되는데, 그 비용은 분양원가에 포함돼 있다. 담합 업체는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한샘, 현대리바트, 에넥스, 넵스 등이 망라됐다. 건설업계 담합 관행이 하루이틀이 아니나 빌트인 가구까지 퍼졌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업체들은 입찰에 참여하기 전 주사위 굴리기나 제비뽑기를 하는 방식으로 낙찰 예정자나 낙찰 순번을 미리 정했다고 한다. 이후 낙찰 예정자는 들러리로 입찰에 참여한 회사에 견적서를 전달하고, 들러리 업체는 견적가보다 더 높은 금액을 써내는 방식으로 공모했다. 이렇게 2012년부터 2022년까지 10년간 24개 건설사가 발주한 738건의 빌트인 가구 입찰 계약금액만 무려 1조9457억원에 달한다. 담합을 통해 불어난 가구 가격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됐고, 아파트 분양원가 상승에도 영향을 미쳤다. 공정위는 담합으로 인해 분양가가 가구당 약 25만원(84㎡ 아파트 기준) 더 높아진 것으로 추산했다. 업체의 ‘짬짜미’ 담합에 국민만 봉이었던 셈이다. 건설사들이 뒷돈을 받고 묵인하지 않았는지 의심이 드는 건 당연하다.



이번 공정위 조사는 중·대형 건설사가 발주한 가구 입찰만을 대상으로 했다. 소형 건설사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을 개연성이 충분하다. 검찰도 자체 수사 중인 상태다. 검찰은 공정위의 조사가 시작된 이후에도 일부 가구 업체 임직원들이 계속해 담합을 시도한 정황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담합 관행이 고질적 병폐임에도 관여한 임직원들이 별다른 죄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는 의미다. 엄벌에 처해 경종을 울려야 마땅하다.

정부가 의식주 등 민생과 밀접한 분야에서의 업체 담합을 막는 이유는 시장을 교란할 뿐 아니라 가격인상으로 결국 그 피해가 국민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경제 활력과 사회적 신뢰 추락도 피하기 힘들다. 그제 한샘은 공식 사과문을 통해 “구시대적인 담합 구태를 철폐하고, 윤리경영을 최우선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형식적인 사과가 아니라 소비자 피해 보상 등 구체적이며 진정성 있는 사과 방안을 내놓아야 옳다. 다른 업체들도 마찬가지다. 그러지 않는다면 정부가 회사 대표에게 보다 실질적인 법적 책임을 묻는 방안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